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김명남 옮김 열린책들·1만5000원
‘위생가설’이란 가설이 있다. 아직 임상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이론은 아니다. 위생적이고 깨끗한 나라일수록 아토피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비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더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영아가 병에 걸리지 않게 과도하게 위생에 신경 쓴 나머지, 외부에서 침입한 물질이나 세균 등에 맞서 싸워야 할 면역계가 싸울 대상을 잃고 혼란에 빠져 결국 자기 몸을 공격하기 때문에 면역질환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 가설로만 남은 이유도 있다. 그 중 하나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서 아토피와 알레르기 질환이 적게 나타나는 이유가 실제로 그 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적어서인지, 아니면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질환을 진단할 여건이 안 돼서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면역에 관하여>는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어렵고 복잡한 면역학에 관해 다루지만 멀게 느껴지는 실험실의 언어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아킬레우스 신화로 시작하는 책의 서두에서 보듯 인문학적 시각을 겸비한 과학적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가 그러했듯이 불멸의 신체 속에도 한 군데 약점은 있다. 당연히 면역에도 완벽은 있을 수 없다. 자연적인 것은 선하고 완벽하다는 편견 못지 않게, 무균실처럼 최대한 온몸과 주변환경을 외부 물질로부터 차단하면 건강이 보장된다는 편견도 면역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우리 몸의 세포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미생물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 대한 완벽한 배척도, 자연스러움에 대한 맹목적 신뢰도 적절한 지침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어떤 백신이 접종자 개인에게 필요한 만큼의 면역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면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가 좁혀지면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까지 집단 면역의 이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구상의 무수한 사람들 간의 접촉이 늘어난 시대, 면역이 ‘공공’의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셈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