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부패의 기원
유종성 지음·김재중 옮김·동아시아·2만3000원
한국, 타이완, 필리핀의 부패 역사를 비교했다. 지은이는 1980~90년대 경실련 정책연구실장과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금융실명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정치자금 투명화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시민사회 활동을 했다. 현재는 호주 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 책은 지은이의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이다.
한국, 타이완, 필리핀 이들 세 나라의 부패지수는 각각 다르다. 매년 공표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는 0부터 10까지 숫자로 표기되는데, 숫자가 클수록 덜 부패했다. 한국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보다 부패가 덜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보다는 부패 수준이 높은 편이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CPI는 5.4, 필리핀의 CPI는 2.6, 타이완의 CPI는 6.1이었다. 세 국가는 모두 1945년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돼 독립을 맞았고 당시 비슷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필리핀이 타이완과 한국보다 교육수준이 높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한국과 타이완에 비해 필리핀의 부패 수준이 심각한 것일까. 지은이는 그 차이를 ‘토지개혁’의 성공 여부에서 찾았다. 필리핀은 토지개혁에 실패했고, 한국과 타이완은 토지개혁에 성공했다. 토지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필리핀에서는 과거 지주세력이었던 소수 가문이 지역의 시장부터 학교 청소부까지 모든 공공 일자리를 독점했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가 부패의 원인으로 주목한 것은 바로 불평등이다. 한국이 타이완보다 더 부패한 것도 한국이 타이완보다 불평등도가 심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타이완의 산업화는 중소기업 중심이었던 반면, 한국의 산업화는 재벌 위주로 진행됐다. 재벌 위주로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정치 및 기업 부패가 타이완보다 극심해진 것이다. 지은이는 불평등은 부패를 만연하게 한다는 점에서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큰 정부가 부패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민영화와 규제완화 등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처방은 부패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라고 비판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