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그리움의 소소한 일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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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간절한 그리움의 소소한 일상들

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최성은 옮김 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갈수록 바라는 게 적어진다. 호되게 앓고 나선 아프지만 않으면 되었다 싶고, 지독한 폭염에 오래 시달린 지금은 선선한 바람 한 줄기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렇게 무사히 살아 있어서 감사한 마음. 누구는 그걸 행복이라 하겠지만 글쎄, 더 나쁠 수도 있었음을 알기에,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잠시 느끼는 안도감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고약한 시절 탓에 범사에 감사하는 처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낱말의 뜻마저 맘대로 바꿔, 살아남음이 곧 행복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행운이라면 몰라도….

그럼 대체 행복이 무엇이냐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보여줄 수는 있다. 현실의 불행에 눈감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 시인이 있고, 그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아름다운 유언이 있으니까. 오랫동안 나는 행복을 믿지도 바라지도 않았으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 <충분하다>를 읽으며 비로소 믿게 되었다. 불만에 찬 비관론자에게도 행복은 가능하다는 것을.

쉼보르스카는 여든아홉 생을 ‘충분하다’ 한마디로 갈음할 만큼 충만한 삶을 살았지만, 근거 없는 낙관에 의지하거나 익숙한 희망을 설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인간을 선악으로 나눠 정의하는 대신, 다 같은 인간의 손이 <곰돌이 푸의 오두막>을 쓰는가 하면 <나의 투쟁>을 쓰기도 한다고(‘손’) 그 이중성을 지적했으며, 그럼에도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쓰레기더미에서 찾은 비둘기장을 “새장이 텅 빈 채로/ 남아 있게 하기 위해” 집으로 들고 가는 사람이 있어서라고 믿었다.(‘얼마 전부터 내가 주시하는 누군가에 대하여’)

그녀는 늘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다. 선에서 악을, 빛에서 그늘을, 아주 작은 미생물에서 가장 큰 우주를 보았고, 자신이 본 것에 경탄했으되 과장하지 않았다.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러니까 함께 아파할 수 있다고 낙관하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만의/ 나눌 수 없는 방식으로” 고통스럽고, 사람이란 그렇게 닮은 듯 다르고 함께하되 고독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므로.

사랑하는 이를 잃는 사별의 아픔에 대해서조차 그녀는 “단지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뿐” “그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고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담담히 일깨웠다. 남달리 냉정하거나 대단한 깨달음을 자부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말도 슬픔을 위로하기엔 모자람을 알기에 그녀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주 이따금/ 자연이 작은 호의를 베풀 때도 있으니/ 세상을 떠난 가까운 이들이/ 우리의 꿈속에 찾아”온다고(‘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세상의 거대함과 자신의 무력함에 공포를 느낀다”고 고백했던 쉼보르스카. 그녀는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지만 일단 지갑에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봐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난해한 은유 대신 쉽고 담백한 말로 그린 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보라. 그 말들이 이룬 엄정하면서도 경이로운 세계를. 그걸 보면 깨닫게 된다.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그 일상을 간절한 그리움으로 불러낸 시인의 마지막 노래를 읽는다. 이 가을이 더도 덜도 없이 충만하다.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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