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의 신체를 모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해나간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를 모방하면서 인간의 지식노동을 대체해나가고 있다. 지난 8월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NEC가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의 채용 시스템을 소개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을 선별해 채용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 출시된 NEC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프로그래머가 작성한 코드만 수행하는 기존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과 달리, 기계학습을 통해 스스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당 시스템은 기존 응시자들의 합격·불합격 결과까지 분석해 채용 여부를 판단하는데, 앞으로는 채용된 사람의 업무 실적까지 학습함으로써 채용에 대한 판단을 더욱 정교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로봇 페퍼와 소프트뱅크 직원들. / 소프트뱅크
나아가서는 전체 임직원의 채용, 근무, 퇴사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데이터 일체를 학습해 인사 전반에 반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다. 해당 시스템은 이미 몇몇 회사에서 도입해 실제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과 미국의 여러 IT 업체들이 인공지능 기반의 인사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제공하는 이점은 명백하다. 관련된 모든 자료를 파악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사실 인간에게 그리 적합하지 않은 일이다. 단지 자료를 검토하는 것만 해도 물리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데이터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판단을 내리는 시점에서는 개인적인 주관이나 편향성이 적잖이 작용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자료가 너무 방대해 모두 살펴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 분야에 인공지능이 적용된다면 인간보다 훨씬 더 신속하면서도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적용된 인공지능이 사회적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더 이상 해당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효율을 능가하는 사람 외에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가진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사법부다. 이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얘기이지만, 특히 한국의 사법부는 인공지능의 도입이 시급하다. 2015년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사법부 신뢰도에서 한국은 27%로 42개국 중 39위를 차지해 1위인 덴마크(83%)는 물론이고 인도(67%), 그리스(44%) 등의 국가와도 큰 차이를 나타냈다. 행정부처이지만 사실상 사법부로 인식되는 검찰의 경우에도 신뢰가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에는 홍만표, 진경준 등 전·현직 검사장들의 추문으로 신뢰가 더욱 하락한 상태다.
검사나 판사가 행하는 지식노동은 방대한 법조문과 더 방대한 판례,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객관적인 판단, 즉 기소 여부를 판단하고 구형을 내리고 판결을 하는 일이다. 그런데 당연히 기소해야 할 범죄임에도 기소를 안 하거나, 중형의 범죄임에도 집행유예를 구형하거나, 또한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 판사·검사가 도입된다면, 국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의 인공지능 기술력이 꽤나 미흡한 데다, 설령 어떤 업체가 그런 기술을 만들었다고 ‘홍보’를 하더라도 그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실이다. 그런 상황이니 (판사·검사들의 반발은 논외로 치고) 단지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인공지능 사법부를 만나는 건 당분간 어려울 거 같다. 그래도 우리 모두 희망을 잃지 말고 그 날을 기다려보자.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ryu@peoplewa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