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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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살인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푸른숲·1만4800원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금방 고개를 흔들었을지라도 찰나 욱하는 감정 정도는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에 살의가 일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내려야 하는데 문 앞에 떡 버티고 있는 사람이라거나, 길을 가다가 어떤 남자의 담배에 스치게 되거나 등.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도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하게 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실제로 죽이지는 않는다. 마음속에 이는 작은 살의들을 모두 표출한다면 세상은 이미 적막해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다스린다. 그를 죽임으로써 나에게 돌아오는 더 큰 상처나 처벌을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실행에 옮긴다. 돈이나 치정 같은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다. 죽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기에, 기꺼이 내가 죽일 뿐이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릴리 같은 이가 그런 무모하고도 냉정한 사람이다.

히스로 공항 라운지의 바에서 남녀가 마주친다. 백만장자인 테드는 처음 만난 빨간 머리의 여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누군지도 모르고, 금방 헤어질 사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소연하듯 말한다. 죽이고 싶다는 테드의 농 섞인 말에 그녀가 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당신이 아내를 죽인다 해도 어차피 죽을 사람 조금 일찍 죽이는 것뿐이에요. 게다가 그녀에게 상처받을 많은 사람을 구해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녀는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예요.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든다고요. 그리고 당신에게 한 짓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나빠요.’ 일주일 뒤, 그들은 다시 만났고 테드와 릴리는 살인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당돌한 이야기다. 이렇게 사람을 쉽게 죽여도 되는 것일까? 더 고민하고, 정말 처절한 고통에 빠져든 후 살인 아니면 헤어 나올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테드는, 아니 릴리는 너무 간편하게 살인을 생각한다. ‘그녀가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오래된 소파를 버리는 일처럼 태연하게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테드와 릴리가 만나 살인 모의를 하면서 벌어지는 스릴러다. 바람을 피운 아내 미란다와 정부인 브래드가 어떻게 죽을지 궁금해 하면서 읽다 보면 갑자기 흐름이 바뀐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면서 독자를 전혀 낯선 곳으로 이끌어간다. 피터 스완슨의 의도는 아니었다. 애초에는 테드가 주인공이었는데 쓰다 보니 릴리가 더 중요하고 궁금해졌다고 한다.

테드와 릴리, 릴리와 미란다 등 주요 인물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죽여 마땅한 사람>은 순식간에 읽게 된다. 그들, 정확히는 릴리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역사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앞으로는 조용히 살면서 다시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남과 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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