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브로드웨이 42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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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포스터엔 늘씬한 무용수들의 다리가 보인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다. 저렇게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재빠른 춤을 출 수 있을까 싶다가도 매혹적인 각선미에 이내 마음을 뺏기고 만다. 화려한 의상과 섹시한 안무를 만끽하고 싶다면 공연장을 꼭 찾으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아 마른침을 삼키게 된다.

원래 영어제목은 그냥 ‘42번가’이다. 브래드포드 로페스가 쓴 소설이 원작인데, 극중 전설적인 히트메이커인 줄리안 마쉬가 어떻게 새 뮤지컬을 완성하는가를 보여준다. 스토리 자체로 인기여서 뮤지컬 이전인 1933년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훗날 등장한 뮤지컬은 영화로부터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 CJ E&M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 CJ E&M

무대 버전이 막을 올린 것은 1980년의 일이다. 자그마치 3486회 연속공연이라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장기공연을 기록했다. 숨겨진 뒷이야기도 유명하다. 공연이 시작되는 날, 연출가 겸 안무가 고어 챔피언이 세상을 떠났다. 폭발적인 환호로 11번의 커튼콜이 이어진 후 프로듀서인 데이빗 머릭은 무대에서 개막 직전에 챔피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흥행을 위해 출연진과 스태프, 심지어 챔피언의 애인에게까지 비밀로 하다가 성공 직후 이 사실을 공표했던 셈이다. 무대는 환호에서 정적과 충격으로 뒤바뀌었고, 모든 언론의 1면을 장식하게 됐다. 결국 뮤지컬에서 말하고자 했던 비정하고 심지어 냉정하기까지 한 쇼 비즈니스 세계는 이를 통해 가상이 아닌 현실임을 드러내게 됐다. 하지만 쇼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도 있었는지, 흥미롭게도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고어 챔피언의 유작인 동시에 데이빗 메릭 최후의 흥행작이 됐다.

예술적 완성도나 작품성에 대한 평가도 높다. 초연이 됐던 1980년, 토니상 8개 부문의 후보작으로 올라 최우수작품상과 안무상을 거머쥐었다. 2001년 리바이벌 무대 역시 인기를 끌었는데, 그해 8개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돼 최우수 리바이벌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토니상 무대를 주름잡을 만큼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미국 브로드웨이산 뮤지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국내에서 첫선을 보였던 것은 1996년의 일이다. 당시 화려하게 등장했던 페기 소여 역의 신예 임선애는 이제 중견급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고 있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무대는 여전히 꿈틀대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2016년 프로덕션에는 송일국과 이종혁이 매력적인 연출자 줄리안 마쉬로, 최정원과 김선경이 도로시 브록으로 등장해 관록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페기 소여로는 예쁜 외모만큼이나 출중한 가창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뮤지컬 배우 임혜영이,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매력남 빌리 로러 역으로는 에릭이 등장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출연진이나 뮤지컬 스타의 활약도 흥미롭지만, 역시 이 뮤지컬 최고의 볼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에너지 넘치는 군무다. 막이 오르면서 등장하는 연습 장면이나 동전 모양의 세트 위에서 신나게 발을 구르는 탭댄스는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다. 아직 뮤지컬이 춤의 즐거움을 담고 있는 장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일단 보고서 이야기하자고 시비라도 걸고 싶다. 탭댄스 슈즈를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제대로 감상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좋은 관람을 경험하기 바란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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