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만들지도 팔지도 못했던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한국에서는 바이오사이드 규제가 없는 점을 악용하여 만들어 팔았다가 끔찍한 대규모 인명사고를 낸 것이다. 사상 최악의 이중기준의 국제적 사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인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국정조사는 옥시와 SK케미칼 등 제조·판매사와 환경부 등 책임부처를 직접 방문조사했다. 홈키파 제조업체인 헨켈이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 사실을 밝혀냈고, 주범 격인 SK케미칼이 처음부터 독성을 알았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CMIT/MIT라는 이름의 살균성분으로 만든 애경과 이마트 등의 제품 사용자 중 정부 지원대상이 되는 데 관련성이 높은 피해사례가 3명이나 된다는 사실도 확인돼 검찰 수사의 필요성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 달간의 국정조사가 보여준 결과는 피해자들과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여야에서 16명의 국회의원들이 나섰고 비슷한 수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투입된 것 치고는 실망스럽다는 혹평이다. 한 달간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단에 참여한 국회의원 중 보도자료를 낸 의원실은 서넛에 불과하다. 현장조사에 얼굴도 비치지 않은 의원도 여럿이다. 19대 국회에서 이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다룬 바 있는 의원은 특조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가 슬그머니 빠졌다. 국정조사단 구성 자체가 매우 늦었고, 핵심기관인 검찰이 조사대상에서 빠져나가 김이 샜다는 점, 전 과정을 공개해 여론의 관심을 유지해야 함에도 비공개로 해 언론 보도의 기회를 스스로 차 버렸다는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한 달간 보여준 국정조사 활동은 무기력하고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틈을 타고 제조사들과 정부 관료들은 무성의와 함께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7월 27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에서 열린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 현장조사에서 아타 샤프달 옥시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사망자 10명 중 7명은 유럽기업의 책임
그렇지만 아직은 국정조사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기 이르다. 앞으로 두 달의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8월 22일부터 4박5일로 예정된 영국 방문 활동은 큰 기대를 모은다. 옥시의 전임 외국인 사장과 영국 본사를 향했던 검찰 수사의 칼날이 무기력하게 무뎌져버린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서울대 수의학과 조 교수와 옥시의 신현우 전 사장, 그리고 롯데의 노병용 사장을 구속하며 기세를 올리던 검찰 수사는 옥시의 외국인 사장들을 조사하면서 무뎌졌다. 존 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고, 싱가포르에 있는 거라브 제인은 ‘조사받을 시간이 없다’, ‘한글을 몰라서 생긴 일이다’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한국 검찰을 조롱했다. 검찰은 이메일만 달랑 보냈고 형식적인 답변을 받고 말았다. 한국 검찰은 골목대장이고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정조사가 검찰의 한계를 넘어 옥시의 외국인 임원과 영국 본사 관계자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8월 말로 예정된 국회 청문회에 불러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행정과 검찰수사권이 국경을 넘지 못하고 빌빌거리며 다국적기업에 대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 정치가 외교의 벽을 타고 넘어 영국과 유럽 사회에 전해야 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가습기살균제 사망자의 68%가 4개의 유럽 기업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이 사건은 유럽에서라면 결코 만들지도 팔지도 못했을 제품을 유럽 기업들이 이중기준을 악용해 한국에서 위험한 제품을 만들어 팔다가 발생한 국제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2014년과 2015년 초에 각각 발표된 정부의 1~2차 조사에서 530명의 피해가 확인됐다. 이 중 옥시제품 사용 피해자가 77.2%인 404명이다. 사망자 146명 중에서 71.2%인 104명이 옥시 피해자다. 옥시는 레킷벤키저라는 영국의 생활용품 다국적기업의 한국 회사로 2001~2012년 초까지 12년간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이라는 이름의 가습기살균제를 400만개나 팔았다.
테스코(TESCO)는 영국에서 제일 큰 슈퍼마켓 기업이다. 이 테스코가 한국의 삼성과 세운 대형할인매장 홈플러스를 통해 가습기살균제PB 제품을 2003~2012년까지 10년 동안 팔았다. 정부의 1~2차 조사대상자 530명 중 테스코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는 10.2%인 54명이고, 사망자는 146명의 10.3%인 15명이다. 그런데 테스코는 홈플러스를 2010년 이후 매각하고 영국으로 철수했고, 이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졌지만 테스코와 삼성에 대한 책임은 묻혀 왔다.
케톡스(KeTox)는 덴마크의 농업용 살균제 판매기업이다. 한국 기업 버터플라이이펙트는 케톡스로부터 PGH라는 살균제를 수입해 ‘세퓨’라는 이름의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팔았다. 2009~2012년 4년이었지만 PGH의 강력한 살균성분으로 인해 정부의 1~2차 피해자 530명 중 세퓨 사용자는 7.7% 41명에 달했고, 사망자는 146명 중 9.6%인 14명이나 된다.
‘엔위드’라는 이름의 가습기살균제는 20여 종류의 제품 중에서 유일하게 액상이 아닌 정제형, 즉 알약 제품으로 약국에서만 팔았다. 알약은 유럽 국가인 아일랜드의 메덴텍이라는 회사에서 수입했다. 제품 표면에 수입완제품이라고 적혀 있다. 정부의 조사에서 엔위드 사용 피해자는 530명 중 3%인 16명이고, 사망자는 1명이다.
독극물 사고 ‘인도 보팔참사’가 대표적
이렇게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 3개 국가에서 4개 회사의 책임이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1~2차 사망자로만 살펴보면 영국의 레킷벤키저 104명, 영국의 테스코 15명, 덴마크의 케톡스 14명, 아일랜드의 메덴텍 1명 등 모두 134명이다. 1~2차 조사 피해자 530명 중 사망자는 146명인데, 이 중 일부가 2개 이상의 제품을 중복 사용했다는 점을 고려한 제품별 전체 사망자는 197명이다. 유럽 4개 기업의 사망자 134명은 제품별 사망자 197명의 68%이다. 다시 말해 가습기살균제 사망자 10명 중 7명은 유럽 회사의 책임인 것이다.
2015년과 올 들어 7월 말까지 접수된 3~4차 피해신고는 현재 조사 중인데, 1~4차 피해자를 모두 합하면 4099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795명이다. 1~2차 피해자의 유럽 회사 제품별 사망비율 68%를 1~4차 전체 사망자에 적용하면 4개의 유럽 기업에 의한 사망자는 모두 540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바로 이 점이 영국을 방문하는 국정조사단이 유럽 사회에 큰소리로 알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이중기준(double standard)’이란 선진국에서 강화되는 안전규제가 개발도상국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미비한 조건에서, 환경이나 안전규정은 동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의 다국적기업 모기업에 적용되는 규정이 개발도상국의 다국적기업 자기업에서는 적용되지 않거나 매우 느슨한 상태로 적용되는 이중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선진국의 기업이나 정부가 공해공장을 개발도상국가에 수출하면서 자신들이 겪은 산업보건 및 환경보건 상의 경험과 개선대책이 함께 전달되지 않아 수입국가에서 이러한 문제와 피해가 고스란히 재현되거나 낮은 근로조건과 규제 미비로 오히려 더 악화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농약회사 유니언카바이드가 1970년대 인도의 중부도시 보팔에 공장을 세워 운영하다 1984년 12월 초 독극물 유출사고를 일으켜 수만명이 죽고 다친 ‘인도 보팔참사’가 대표적인 이중기준과 공해 수출의 사례다. 1970년대 초반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전쟁 보상조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보낸 공해공장인 원진레이온의 노동자 직업병 사건도 이중기준과 공해 수출의 사례다. 1970년대에 일본에서 한국 부산으로 건너온 석면방직공장이 1992년 다시 인도네시아로 이전한 사례도 같다.
가습기살균제에 넣는 살균제와 같은 살생물제, 즉 바이오사이드에 대한 규제를 유럽에서는 1998년부터 엄격하게 시행했다. 즉 제조·판매사들은 제품 안전에 대한 근거를 제출해야 판매가 가능하다. 따라서 레킷벤키저와 테스코, 케톡스와 메덴텍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유럽에서는 만들지도 팔지도 못했던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한국에서는 바이오사이드 규제가 없는 점을 악용하여 만들어 팔았다가 끔찍한 대규모 인명사고를 낸 것이다. 사상 최악의 이중기준의 국제적 사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인 것이다. 국정조사특위 위원장과 여야 의원 4명의 영국 방문활동이 가습기살균제 문제의 이중규제 본질을 유럽 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