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학인들의 연간 소득은 평균 200만 원대로 매우 낮다. 돈벌이와 글쟁이란 직업 간 관계가 그리 살갑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미술평론가들의 처지도 문학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전업비평가로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필자의 형편이라고 딱히 나을 건 없다. 물질적 군궁함으로만 따지자면 여타 평론가들과 호형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것인데, 바로 그림이 문제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다지만, 빈도가 너무 잦다. 그러니 곳간 상황인들 좋을 리 없다.
허나 정작 나 자신은 안연하다. 그림에 대한 이미지가 다소 부르주아 적이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다른 걸 절약하면 누구나 저렴하게 소장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낼 모레가 지천명인데 노후는 어찌할 것이냐며 타박하는 지인들이 적잖다.

김윤아 작, a fond look, 캔버스에 유채, 116.8x91.0cm, 2016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실 그림을 구입하는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일단 미술을 배웠으나 더 이상 그릴 수 없는 환경이 소장(所藏)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됐고,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 흔한 것조차 결여된 내게 기꺼이 십시일반 한 작가들에게 진 마음의 빚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맺은 한 인연 역시 그림을 사는 이유를 거들었다. 그와의 만남은 그림을 구입하는 동기와 목적을 명확하게 해준 계기였다는 점에서 지금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당시 50대였던 그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평범한 독일인이었다. 다만 자택 구석구석 놓인 다양한 작품들과 애착은 유달랐다. 판화, 드로잉, 수채화, 유화를 망라한 그의 컬렉션은 그야말로 작은 미술관을 방불케 했다.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고, 그림이 많은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는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틈틈이 전시장을 방문하고 눈여겨본 작품을 수첩에 기록한다. 이후 돈이 모이면 아내와 상의해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씩 구입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림은 반드시 여유로워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림을 구입하는 까닭도 궁금했다. 이에 그는 “만약 우리가 작던 크던 누군가의 그림을 소장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붓을 꺾지 않을 것이고, 그 중 일부는 훗날 훌륭한 작가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림은 소장하는 게 아니라 잠시 보관하는 것일 뿐이며, 후대에 물려줄 공공의 유산이라고 덧붙였다.
미술을 삶의 공기처럼 대하고, 그 공기를 만드는 이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콜렉터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일화로 가슴 깊이 새겨져있다. 특히 대가 없는 부의 이전을 비롯해 비자금, 세금탈루, 투기와 같은 부정의 기호로만 인식되고 있는 우리네 현실과 비교할 때 그의 그림 수집에 관한 철학은 꽤나 인상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와의 만남은 현재의 나를 그림 앞으로 이끄는 자극이 됐다. 좋은 작품을 보면 쌈짓돈부터 조몰락거리는 일상을 만들었다. 비록 망할 누진세 탓에 전기세 고지서만 봐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처지지만 그림 구입을 후회한 적도 없다. 마음의 습관에게 가난은 단지 인생이 주는 격언일 뿐임을 그로부터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