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5세 이상 인구의 1.6%가 100세 이상을 산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져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고령화·노령화 사회의 징후를 여러모로 찾아볼 수 있다. 이애란의 ‘백세인생’이 테마송처럼 불려지고, 80세 만기를 100세 만기로 조정하라는 보험광고가 어디에서나 흘러나온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최근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서도 노환과 노인성 치매 등 고령화 시대의 사회문제들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7월에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 윤대성 작·이윤택 연출의 <첫사랑이 돌아온다>와 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플로리앙 젤레르 작·박정희 연출의 <아버지> 역시 이러한 노인성 치매를 소재로 한 연극들이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은 기존의 이야기들이 치매, 혹은 치매 환자를 바라보고 다뤄온 방식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위)<첫사랑이 돌아온다> / 연희단거리패, (아래)<아버지> / 국립극단
먼저 <첫사랑이 돌아온다>는 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두 치매 노인의 소소하고 따뜻한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외로움에 지쳐 낯선 이를 첫사랑으로 착각하는 할아버지와 아픈 과거를 애써 잊느라 많은 기억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만나 서로를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덕분에 둘 다 평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는 치매가 단순히 ‘기억의 상실’만이 아니라,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삶의 황혼을 자신이 꿈꾸는 대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치매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작품들처럼 치매 환자의 고통과 무력함, 가족의 아픔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치매의 치유적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이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극 <아버지>는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점점 소멸해가는 한 인간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치매를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이야기들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즉 치매 환자를 의사나 가족의 시선과 같은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치매 노인 당사자의 관점으로 극을 진행시킴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치매 환자가 겪는 혼란과 두려움을 1인칭의 시점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연극 <아버지>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점차 사라져가는 한 인간의 기억을 가구와 소품, 그리고 점멸하는 조명을 통해 시각화했다는 점이다. 첫 장면에서 무대는 심플하지만 깔끔한 스타일의 가구와 소품들로 꾸며져 있다. 식탁과 의자, 소파와 스탠드, 화분과 사이드테이블 등이 정돈된 형태로 놓여져 있다. 하지만 차차 희미해져가는 주인공 아버지의 기억처럼 무대 위의 가구들과 소품들은 막이 진행될 때마다 하나씩 사라져간다. 처음에는 스탠드가, 다음에는 화분이, 그리고 테이블과 소파가 없어지는 식이다. 무대 위가 점점 비어갈수록 극중 아버지의 기억 역시 점점 더 희미해진다. 그리하여 무대를 채우고 있던 가구와 소품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 주인공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기억이 사라져버린 자신의 머릿속처럼 텅 빈 무대이다. 휑한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외로운 뒷모습은 그 자체로 치매라는 고독한 감옥에 갇힌 환자들의 막막한 내면을 은유하는 듯해 애잔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8월 1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