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대작 논란,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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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작 논란은 그 어떤 이슈보다 강력했다. 그야말로 5월부터 약 두 달여 동안 사회와 미술계를 들었다 놓았다. 논란은 조영남 대신 그림을 그렸다는 한 작가의 주변인물이 언론에 상황을 전달한 것이 발단이었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지난해 1월 중순까지 송기창 작가를 비롯한 복수의 작가들에게 그림을 주문한 후 덧칠해 팔아 1억5000만원 정도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속초지검은 지난 6월 14일 사기혐의로 조영남을 불구속기소했다.

언론의 집중포화에 놀란 조영남은 “조수를 기용한 대작은 미술계 관행”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그러자 ‘대작’ 논란은 ‘관행’ 논란으로 번졌다. 미학자 진중권은 숱한 서구의 사례를 들며 거의 유일하게 조영남의 관행 발언을 옹호했다. 반면 다수의 미술인들과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송기창, 무제, 페이퍼보드에 아크릴, 잉크, 2013

송기창, 무제, 페이퍼보드에 아크릴, 잉크, 2013

세기마다 예술의 새로운 정의가 나타난 건 사실이나 그 새로움에 모든 작가들이 동의했다고 보긴 힘들며 관례와는 더더욱 거리가 있다고 봤다. 조수가 대신 작품을 만드는 일부 외국 작가들의 미적 개념과 태도를 부정할 순 없지만 그것이 보편적 기준도, 정답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관행’이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도 책 속에서 찾은 예시와 현장성 및 실체성을 경험한 이들의 입장은 달랐다.

조영남의 ‘미술계 대작 관행’ 주장은 미술인들의 실질적 행동까지 유발했다. 한국판화가협회는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미술협회를 비롯한 11개 미술단체연합은 명예훼손으로 조영남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번에도 진중권은 적극 나섰다. “저게 헬조선 화가들의 지적 수준”이라며 힐난했고, 미학적 비판이나 윤리적 비난을 넘어 법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관점이 어떠하든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그의 담의 방식은 긍정적인 반응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했다.

그러는 사이 조영남은 서울에서 재판을 받겠다며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 관할위반선고와 함께 이송신청서를 냈다. 지난 13일 첫 공판이 열려 관할 심리를 다뤘으며, 법원은 27일 결정하기로 했다. 존폐 위기에 놓였던 하동군 소재 ‘조영남 갤러리’는 ‘존치’로 방향을 정했다. 다만 조영남은 오랜 시간 진행한 MBC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완전히 하차했다. 예정된 전시들도 속속 취소됐다.

본의 아니게 논란에 휘말렸던 송기창 작가는 얼마 전 속초를 떠나 경기도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엔 최진용 전 국립극장 극장장을 회장으로 한 후원회도 결성됐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창작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많은 이들이 합심한 결과였다. 송 작가의 경우 무엇보다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을 다시 구현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작가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한때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지금은 본연의 삶에 충실하는 중이다.

한편 조영남 대작 논란은 뜨거웠던 만큼 남긴 아쉬움도 컸다. 우선 미술계는 다양한 동시대 예술 방법론에 관한 심층적 토론 없이 관행이냐, 아니냐는 표피적 의견만 분분한 채 시간을 보냈다. 지식인들은 조수 혹은 조력자들의 노력도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 했음에도 그저 생산성 없이 무언가를 잔뜩 쏟아내는 데 그쳤다. 인간적인 대우에 관한 사회적 담론 생성 기회도 놓쳤다. 특히 마치 남이 그린 그림에 사인이나 하는 부류인 양 왜곡된 작가들에 대한 대중인식은 조영남 논란이 남긴 가장 큰 상처라고 할 수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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