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설명 못하는 마음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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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과학이 설명 못하는 마음의 우주

엑시덴탈 유니버스
앨런 라이트먼 지음·김성훈 옮김 다산초당·1만4000원

원래도 비관적인 편인데 요즘 들어 부쩍 더하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절감케 하는 때 이른 폭염, 원자력발전소 밀집지역 인근에서 발생한 강도 높은 지진,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드 배치, 여기에 몇 달째 계속된 병까지 겹쳐 몸도 마음도 심란하다. 지구 걱정 나라 걱정을 하며 이 책 저 책 들춰보지만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저 이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뿐. 그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책 한 권을 꺼내 펼친다. “하나의 우주 안에도 일부는 보이고 일부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 짧은 머리글을 읽는 사이 소란하던 안팎이 고요해진다. 눈앞에 펼쳐진 다른 우주, 제목처럼 우연히 만난 <엑시덴탈 유니버스>다.

책을 쓴 앨런 라이트먼은 오전에는 물리학, 오후에는 문학창작을 가르치는 이론물리학자 겸 소설가로, 이 책은 그의 남다른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쪽에 불과한 얇은 책에 다중우주, 암흑에너지, 힉스 보손 같은 어려운 물리학 개념부터 푸코의 진자, 파울리의 중성미자, 맥스웰의 방정식 등 과학사의 주요 성과들이 두루 언급되었으니 머리에 쥐가 날 만도 하건만 천만에! 나 같은 과학 지진아가 책장 넘어가는 걸 아쉬워할 만큼 문장은 유려하고 고민은 깊으며 생각은 자유롭다.

과학자로서 라이트먼은 이 세계를 최대한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만, 인문학자로서 그는 이 설명이 담아내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상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우주만이 아니라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우주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리처드 도킨스가 과학적 논증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반대하면서, “우리 우주를 창조한 것이 무엇인지 과학은 결코 알아낼 수 없다”고 확언한다. 신앙고백이냐고? 오해하지 마시라. 그는 무신론자다. 그는 우리 우주가 지금처럼 생명이 살기 좋게끔 만들어진 것이야말로 신이 있다는 증거라는 종교인들의 ‘지적 설계론’에 대해, 최신 물리학의 다중우주 개념을 들어 반박한다. 다중우주론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우주 중 하나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으로서, “우리 우주가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그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우연성은 신의 설계만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속성을 기본원리로 설명하려는 물리학의 오랜 꿈도 부정한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가 우연의 결과물이며 계산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아가 “우리에겐 다른 우주를 관찰할 방법도, 그 존재를 입증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물리학자들에겐 심란한 일이지만 라이트먼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과학자인 그는 물리적 우주의 모든 속성과 사건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과학의 핵심교리를 지지하고 인간이 물리적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지만, “과학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니며 세상엔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면서 기꺼이 그 한계를 인정한다.

살아갈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아서 막막했는데 “모든 해답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해준 이 덕분에 힘이 난다. 자신의 답만이 정답이라 믿는 자들은 짐작도 못하리라. “잠긴 문처럼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며 사는 기쁨을.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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