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이 서울 마포의 사무실에서 인도적 대북지원 얘기를 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북한 주민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건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더라.”
6월 21일로 인도적 대북지원 단체인 사단법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발족한 지 20년이 지났다. 창립 멤버인 강영식 사무총장(54)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남북 위정자에게 섭섭함 내지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북한 취약층이기 때문이다.
1995년 8월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가 국제사회에 홍수피해에 따른 식량난으로 지원을 호소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지원을 꺼렸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을 계기로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의 여파였다. 그러나 1996년부터 굶어죽는 주민들의 ‘고난의 행군’ 소식이 들려왔다. 참다 못한 6대 종단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결성하고 범국민운동을 전개했다. 이듬해 ‘옥수수 10만톤 보내기 운동’은 대대적인 국민 성원을 이끌어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2008년까지는 지원물자나 방북 횟수가 늘었다. 그러나 2009년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교류·협력이 급감했다. ‘인도적 지원이 핵·미사일로 돌아왔다’는 비판 때문이다. 강 총장은 “그나마 이명박 정부 때는 민간의 밀가루 지원 등을 일부 열어주고, 민간단체를 만나주기라도 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구상을 밝힌 독일 드레스덴 연설 후 급속도로 관계가 위축됐다. 북한도 2년 동안 문을 걸어잠갔다. 올해 2월 박 대통령의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은 돌아오기 힘든 다리를 건넌 격이다. 박 대통령은 “도발에 굴복하여 퍼주기식 지원을 하는 일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는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못박았다. 핵·미사일을 해결하기 전에는 대북지원도 끊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 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완고한 일관성”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전 정부에서는 김덕룡 전 민화협 상임의장 같은 인사가 대북지원, 교류·협력에 중간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현 정부에는 아무도 없다.
강 총장은 “북한도 민간단체들이 노력해 지난 20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말했다. 농업개혁 효과 등으로 5~6월 보릿고개를 넘긴 듯 보여도, 장마당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인구 30~40% 추정)의 식량 부족은 여전히 심각하다고 본다. 지난해 가뭄 피해도 적잖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 총장은 “최근 해외 동포사회를 통해 북측이 서서히 지원 얘기를 꺼내는 것 같다. 추석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조만간 해올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북측은 6월 27일 남측 민간단체 등에게 통일대회합을 열고 7월 중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안했다.
강 총장은 “대북지원은 인권문제인데, 남북이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건 문제가 많다”며 “차기 정부부터는 민간 교류·협력만큼은 자율에 맡기되, 전용 등 투명성과 효과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는 방식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눔과 평화의 길, 그 스무 해의 여정>이라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20년 백서가 두께만큼이나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긴급 식료품 지원부터 채소 하우스, 양돈장 설치까지 교류·협력의 기억들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남북 위정자들에겐 이 책자가 주민 목숨만큼이나 가볍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