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직시하기 힘든 잔인한 현실](https://img.khan.co.kr/newsmaker/1184/20160712_81.jpg)
다크 할로우
존 코널리 지음·박산호 옮김·구픽·1만5000원
엄청난 사건을 겪고 나서 인생의 경로가 완전히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찰리 파커는 뉴욕의 형사로서 평탄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 그는 죽은 자들을 본다. 아내와 딸은 물론이고 접하는 사건의 희생자들이 그에게 나타나고, 말을 건다. 어쩌면 ‘공감능력’이고, 또는 ‘일종의 광기로, 슬픔과 죄책감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혹은 다른 세상을 보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다.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의 이름과 같아 ‘버드’라고 불리는 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 사립탐정이 되었고, 가장 친한 친구는 흑인 킬러 루이스와 그의 동성 애인 앙헬이다. 슬픔과 분노와 복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버드는 ‘복수천사’가 되었다. ‘폭력이 필요하지 않아. 하지만 그래야 한다면 폭력을 쓸 거야. 난 가만히 서서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걸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찰리 파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다크 할로우>는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 몇 가지로 시작한다. 한 할머니가 양로원을 빠져나와 경비원에게 훔친 총으로 자살한다. 갱단이 얽힌 총격전에서 FBI 요원들이 살해당한다. 찰리는 리타의 전 남편 빌리에게 위자료 받는 일을 하게 된다. 며칠 뒤, 리타와 아이가 살해당한다. 전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던 사건들의 실이 하나둘 보이고, 엮이면서 수십 년 전의 연쇄 살인이 떠오른다. 섬뜩하고 예리하게 인과관계를 찾은 끝에 드러난 악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메인주의 작은 마을 다크 할로우로 모든 것이 모여든다. 탐정과 킬러, 갱단, FBI,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연쇄 살인마까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다. 아내와 딸이 죽고, 범인을 직접 처단한 찰리 파커는 여전히 생생한 악몽들에 시달린다. 슬픔도 그대로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는 살아야만 한다. 찰리 파커 시리즈는 서정적인 범죄소설이다. 메인의 황량한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가족이 떠나간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찰리의 마음이 느껴진다. 고향으로 돌아가 만나는 사람들, 하나씩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과 회한들. 그 모든 것이 쓸쓸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진다.
유령을 보고 악몽을 꾸는 초자연적인 현상도 황당하지 않고, 찰리의 마음을 공감하게 해 준다. <다크 할로우>를 읽고 있으면, 과거의 역사들에 대해 알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으로만 보이지만 과거에 인디언과 백인들의 처절한 학살, 그리고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어쩌면 공간은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낙인처럼 순간의 풍경이나 감정들이 배어들 것이다. 그 흔적에 매료되거나 홀린 이들이 다시 그곳에 피를 불러들인다. 무엇도 사라지지 않는다. 찰리는 그곳에 남은 기억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마음 깊숙이에 남아 있는 상흔들을. 찰리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때로 폭력을 쓴다.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존 코널리의 소설은 몽환적이다.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인데도. 아마 찰리 파커도 그럴 것이다. 차마 직시하기가 너무 힘들어 유령을 통해 보는 것일지도. 현실 너머의 무엇을 끌어들여야만 겨우 현실을 참아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존 코널리의 소설은 아름답다. 처절한 아름다움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