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측면에서 가상현실(VR) 시장의 전망이 밝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장애요인들도 존재하고 있다. 2016년 초 글로벌 게임 미디어 게이머네트워크(Gamer Network)가 여러 게이머 웹사이트의 사용자 1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가상현실 시장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단지 15%의 사용자만이 VR헤드셋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많은 사용자들이 VR헤드셋 구매에 소극적인 걸까? 주된 이유 중 하나로 ‘높은 구매비용’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단순히 360도 동영상 감상이나 간단한 콘텐츠 경험이 아니라 본격적인 고품질의 가상현실 체험에 초점을 두고 살펴본다. 가장 고품질의 가상현실 체험을 제공하는 PC VR의 경우, 사용자는 VR헤드셋 외에 값비싼 그래픽카드와 CPU를 탑재한 PC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는 예상과는 달리 599달러라는 높은 가격으로 정식 출시됐으며, HTC 바이브(Vive)는 799달러로 정식 출시됐다(물론 둘 다 한국에는 정식 출시조차 되지 않았다). 모두 고성능의 PC를 필요로 한다. 그래픽카드는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970 또는 AMD의 라데온 R9 290 이상이 필요하다. 그래픽카드 단품의 국내 가격만 해도 35만~50만원에 달한다(2016년 6월 기준). 이 정도의 그래픽카드를 가진 PC 사용자는 하드코어 게이머들밖에는 없다. 또한 CPU는 인텔 i5-4590 또는 AMD FX 8350 이상이 필요하다. 리프트 인증을 받은 PC의 최저가는 949달러다. 여기에 VR헤드셋 구매비용을 더할 경우 집에서 가상현실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 1500달러가 필요한 상황이다. 2016년 하반기부터 보다 고성능이면서 저렴한 가격의 그래픽카드가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구매비용이 대폭 절감되는 건 아니다.

VR헤드셋이 아직 광범위하게 보급되지 않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과 구동에 고성능PC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HTC가 내놓은 VR헤드셋 바이브(Vive).
다음으로 살펴볼 문제는, 대중적인 킬러앱(Killer App, 시장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강력한 애플리케이션)의 미비다. 게임, 성인물 등은 이미 일부 사용자들의 대대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실제 구매로도 이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게임과 성인물만으로 모든 사용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가상현실 콘텐츠가 등장하고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상현실은 e커머스, 교육, 라이프스타일, SNS, 기업용 솔루션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양이 질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볼 때, 양적으로 너무나 부족하기에 질적인 킬러앱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현 시점에서 가상현실 대중화를 저해하는 이러한 몇 가지 이슈들의 위력은 명백하다. 하지만 긍정적이고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해당 이슈들이 해결될 경우 가상현실 시장의 성장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슈들은 영구적인 문제점들이라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들이다. 왜냐하면 가상현실은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기술보다도 강력한 말초적·정신적 자극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고,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강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중화의 시점’이다. 그 시점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구매비용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는지,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어필할 수 있는 킬러앱이 등장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시점이 오면 우리의 일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고, 가상현실 시장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ryu@peoplewa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