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북에서 내려온 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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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젊은 음악가 김선호의 가족이 탈북을 한다. 첫사랑 연인 연화와 함께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훗날을 기약한다. 국경만 넘으면 행복이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러나 선호의 가족은 대도시의 비열함과 눈 감으면 코라도 베어갈 것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자포자기의 심경이 되어 선호는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지만,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력 강한 치킨집 여인 경주를 만나고 결국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아스라이 잊혀진 과거가 될 것 같던 어느 날, 그러나 선호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에서 내려온 연화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뮤지컬 <국경의 남쪽>에 등장하는 줄거리다.

‘보트 피플’이라는 말이 있었다. 공산화된 월남에서 살 수 없던 베트남 사람들이 낡고 허술한 선박에 한가득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향해 탈출을 벌였던 1970년대 세계 역사 속 엑소더스다. 상어떼의 먹이가 될지 모르지만, 차마 그곳에선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마지막 생존을 위해 바다를 향해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서는 그들의 처절한 사연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는 인류 근대사의 아픔이다.

2016 국경의 남쪽 대표사진/ 서울예술단

2016 국경의 남쪽 대표사진/ 서울예술단

요즘은 ‘랜드 피플’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바다는 아니지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자유를 찾는 사람들의 행렬을 말한다. 바로 북한에서 벌어지는 엄연한 현실이다.

얼마 전에는 해외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젊은 처자들이 단체로 탈출을 감행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눈물 나는 사연들을 듣고 있자면 북녘땅의 인권문제에 대해 새삼 안타까워진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곳을 벗어났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체제,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그에 합당한 변화와 노력, 그리고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뜻하지 않은 곤경이나 생각지 못한 역경도 만날 수 있다. 국경 남쪽의 삶에는 경우의 수가 많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복잡한 자유주의와 자본가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서울예술단이 새롭게 선보인 가무극 <국경의 남쪽>이 주는 감상의 근간이다.

원작은 2006년 제작된 동명 타이틀의 영화다. 극적인 반전이나 뚜렷한 자극 없이 잔잔하게 진행되던 영화는 무대용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 템포를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안판석 감독은 훗날 <하얀 거탑>,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등 안방극장의 히트 연속극을 연이어 발표하며 낙양의 지가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 작품에선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이고 가슴 한편을 찡하게 울리는 감수성과 섬세함을 잘 보여준다.

특히 뮤지컬에서 돋보이는 것은 음악이다. 극적으로 잘 배려되고 고안되어진 선율이 이야기의 감동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방송을 통해 선호의 결혼을 눈치챈 연화가 선호 가족이 운영하는 평양식당을 찾아오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나는 여기, 너는 거기’는 아픈 현실에 대한 감상이 온전히 담겨진 이 뮤지컬의 백미다.

어렵게 인생을 찾은 선호가 자신을 만나려 목숨을 건 탈북에 성공한 연화와 재회하는 장면에선 객석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나온다. 마음 쓰리고 가슴 아픈 두 사람의 운명이 너무도 안타깝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지 우리의 현실이 딱하고 안쓰러워 마음이 아프다. 앙코르 공연이 꾸며지면 주변에 권하고픈 무대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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