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거미는 왜 무릎을 꿇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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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 상대를 이기기 위하여 ‘어른아이’와 ‘기억상실’을 불렀던 거미가 상투적인 의상에 진부한 몸놀림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씁쓸한 것이었다.

거미가 무릎을 꿇었다. 지난 15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신의 목소리>의 한 장면이다. 보다가 깜짝 놀랐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만화가 김성모의 유명한 선언. 즉 ‘내가 무릎을 꿇는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지’ 하는 절묘한 반전이 아니고서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행동이다.

물론 거미가 무릎을 꿇은 것은 어떤 굴복도 모욕도 아니고, 그야말로 ‘신의 목소리’ 수준에 도달한 가수들이 이른바 ‘가창력’을 경연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날 출연한 가수 윤도현의 표현대로 ‘미국 록’을 소화하기 위한 퍼포먼스의 일환이었다.

거미는 왜 무릎을 꿇었던가. 노래 잘하는 32세의 아마추어 김혜란과 ‘경쟁’을 펼치는 과정에서 한 선택이었다. 한때 가수로도 활동했던 김혜란은 거미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를 불렀고, 거미는 김성재의 ‘말하자면’을 불렀다. 방송을 보면,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거미가 “여전사로 변신하겠다. 아주 강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여전사’라는 단어는 실제로 여성 해방이나 평등과 관련된 운동 및 그 캐릭터가 아니라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 이미지’의 한 형태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여전사’라고 할 때, 그 말 자체가 이미 판에 박힌 어떤 상황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거미는 올블랙 스타일링으로 무대에 올랐다. 간주에서 격렬하게 헤드뱅잉을 하였고 급기야 무릎까지 꿇었다. 꿇은 채로 상체를 뒤흔들었다. 가수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 상대를 이기기 위하여 ‘어른아이’와 ‘기억상실’을 불렀던 거미가 상투적인 의상에 진부한 몸놀림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씁쓸한 것이었다.

SBS 가수 경연 프로그램 <신의 목소리>에 나온 거미, 현쥬니, 윤도현. / SBS

SBS 가수 경연 프로그램 <신의 목소리>에 나온 거미, 현쥬니, 윤도현. / SBS

록밴드 국카스텐의 리드보컬 하현우
나는 씁쓸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한순간, 인기가수들이 즐겁게 펼치는 색다른 퍼포먼스, 실제 공연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동작들. 그것을 보면서 과도하게 상처 입는 것도 문제지만, 적어도 그 장면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씁쓸하였고, 나는 이것이 내가 진실로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애정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작을 하고 일어서면서 가수 거미 또한 어색하게 웃었다. 하다하다 내 별일 다한다, 뭐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본인에게 썩 어울리지 않는 퍼포먼스를 하고 나서 쑥스러워서 웃는 표정이었는데, 본인만을 위하여 완벽하게 세팅된 라이브 무대에서는 그런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으리라.

가수 지망생들을 위한 수많은 경연 프로그램과 더불어 이미 독자적인 자기 세계를 갖고 있는 최고 가수들의 경연 무대가 <나는 가수다> 이후로 쉼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신의 목소리>를 비롯하여 <불후의 명곡>, <판타스틱 듀오> 등이 꽤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곳곳에 출몰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불편하고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노래! 그것이 만들어진 시공간의 복합적 의미 대신 선율의 가창에만 집중한다.

노래! 그것이 감염시키는 사랑과 슬픔과 희열의 온도 대신 성대의 능력만이 요구된다. 노래! 그것이 빚어내는 일렁거리는 공기의 미묘한 떨림 대신 자극적인 화면을 위한 임기응변의 예능감과 과도한 퍼포먼스로 일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너무 많은 카메라와 그것에 의한 1초 안팎의 편집과 그 편집된 화면을 채우는 지나치게 수준 낮은 자막들, 즉 ‘폭발력 넘치는 가창력’이나 ‘호소력 짙은 목소리’ 같은 진부한 단어들은 ‘그 가수의 그 노래’가 지닌 시공간을 유영하는 어떤 미묘한 초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9주 동안 ‘복면가왕’으로 ‘가창력’ 소모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복면가왕>이다. 기본적으로 오락 프로그램이다. 철저히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인데, 일단 그 복면과 닉네임이 독특하여 관심을 끌게 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가왕’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2대 가왕은 ‘황금락카 두통썼네’라는 닉네임의 에프엑스(f(x)) 루나였다. 9대 가왕은 ‘매운 맛을 보여주마 고추아가씨’라는 넥네임의 여은이었다. 둘 다 걸그룹 가수에 대한 편견을 일정하게 깨주었다. 실은 1대 가왕에 오른 EXID의 솔지부터 그런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록밴드 국카스텐의 리드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하현우가 있다. 그는 첫 경연 때부터 “하현우다!” 하고 순식간에 알려질 정도였는데, ‘음악대장’이라는 캐릭터로 9회 연속 가왕 자리에 앉아 있었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5연승을 했고,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라는 닉네임으로 가수 거미가 4연승을,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라는 캐릭터로 가수 김연우도 4연승을 했는데, 그래도 하현우의 절반 정도다. 9회면 두 달이 넘는 기간이다. 록 마니아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하현우의 ‘가창력’이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MBC <복면가왕>에서 9연속 ‘가왕’에 오른 국카스텐의 하현우. / MBC

MBC <복면가왕>에서 9연속 ‘가왕’에 오른 국카스텐의 하현우. / MBC

그리하여 그의 음악세계까지 널리 알려졌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복면가왕>은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줄지어 출연하지만 복합적 의미의 음악성을 폭넓게 감상하는 시간이 아니고, 이른바 ‘폭발력 있는 가창력’을 뼈대로 하여 그 소유자가 ‘의외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놀라기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현우, 즉 가창력 뛰어난 가수가 아니라, 록밴드 국카스텐의 리드보컬인 하현우가 추구하는 뒤엉킨 자의식의 모순된 표현이 드러날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고, 제작진은 물론 무엇보다 하현우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왕의 자리에서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는 것이 좋았다. 이미 <나는 가수다>에도 출연하여 그 무슨 ‘가창력’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발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또다시 9번이나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2003년 ‘The C.O.M’으로 시작하여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로 선정된 바 있는 국카스텐과 하현우는 몇 차례의 이합집산과 방황을 거친 후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 헬로루키 선정을 전후로 하여 일약 한국 록의 파괴적인 탐미주의자로 평가받았으며, 타로 카드의 주술성을 바탕으로 한 2009년 2월의 첫 앨범 그 타이틀 곡인 ‘거울’로 록 마니아들은 물론 일정하게 대중적인 평가까지 획득하게 된다. 2014년 11월에 발매된 정규 앨범 2집 도 회화와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표현 양식의 적극적인 교차를 시도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여, 그들의 연주는 눈부셨고, 무대는 파괴적이었으며, 하현우의 보컬은 예리하였으나, 함께 쓰고 부른 노래들의 주제, 곧 그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가사는 탐미적이라기보다는 키치적이었다.

널리 인기를 끈 ‘거울’을 비롯하여 그밖의 많은 노래들에서 하현우와 국카스텐은 출구 없는 비밀의 방에 갇힌 폐쇄된 자아의 속삭임과 울부짖음을 들려주고자 하였는데, 그것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외적 상황의 압력에 따른 내면 상황의 불안과 일정하게 겹쳐지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를 통해 비틀린 운명을 노래하고, ‘저글링’을 통해 생존의 묘기를 부려야만 하는 현대인의 비애를 노래하고, ‘몽타주’를 통해 모순된 상황의 충돌을 표현한 하현우와 국카스텐의 시도는 무르익지 않은 생경한 관념의 표현에 가까웠다. 충분히 내면화되지 않아 신맛이 나는 주제를 과도한 장식적 욕망, 즉 현묘한 일렉트릭과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표현해내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성숙한 고뇌의 산물이 아니라 탐미적 욕망의 현묘한 표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이런 아티스트와 록밴드가 흔치 않고 더욱이 그 무대 위의 연주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므로, 이만한 탐미적 욕망을 가졌다고 하면 앞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충격과 파괴의 미적 반전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나는 기대해 왔다. 그랬는데, 무려 9주 동안 ‘복면가왕’이 되어 오직 ‘가창력’만을 두 달 넘게 소모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씁쓸했던 것이다. 그랬는데, 내 사랑하는 거미마저 무릎을 꿇다니.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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