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물리적 실행’에 충실한 예술가들](https://img.khan.co.kr/newsmaker/1181/20160628_81.jpg)
예술가의 항해술
화이트 리뷰 지음·정은주 옮김 유어마인드·1만6000원
조영남 대작 사건에 대해 평론가 진중권은 “작가는 콘셉트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관행”이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는 ‘교양 없는’ 검찰을 비판했다. 교양 있는 나는 그가 말했듯 미술계에서 대작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앤디 워홀 같은 이는 아예 ‘공장(The Factory)’을 차려 작품을 생산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관행에 대한 저항이라면 모를까 관행이 예술의 기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행보다 콘셉트라는 주장도 미심쩍다. 당장 나만 해도 콘셉트보다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실행’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사실 콘셉트 자체가 창작이라면 작곡가가 악보를 발표하듯이 미술가도 콘셉트 도안을 내놓는 방식이 나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싼값에 그림자노동을 이용하고 제 이름값을 붙여 파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실행을 맡기는 편이 사회·경제적으로 공정할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더 풍부한 결과물을 낳을 수 있으므로.
<예술가의 항해술>이란 책을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이미 있었다. 프랑스 작가 에두아르 르베는 “저자가 구상했으나 실현하지 못한 작품들을 설명하는 책”을 첫 번째 프로젝트로 내놓았고, 상상의 프로젝트 500여개를 열거해 <작품들>이라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개념미술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예술가의 항해술>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책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리베카 솔닛을 비롯해 작가, 화가, 사진가, 큐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열두 명의 예술가를 인터뷰한 대담집인데 이런 참신한 발상들로 가득하다. 개중에는 책 뒤에 실린 이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너무 참신하고 독특해서 난해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예술가들의 말은 작품보다 해설이 더 어려운 현대미술의 관행과 달리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이해하기 쉽다. 덕분에 낯선 이미지에 주눅 들기보다는 드러난 엉뚱함을 웃으며 즐길 수 있고 예술이 생각보다 훨씬 더 현실과 가까움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예술가들은 자신이 ‘물리적 실행’으로부터 자유롭다거나 현실을 초월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은 장소에 따라 달라질 만큼 “그리는 행위와 그 결과의 물질성을 바탕으로 한다”(뤽 타위만스)고 말하고, “손이 그림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가기에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작업보다 한층 더 흥미롭다”(파울라 헤구)고 고백한다. 이는 글쓰기도 마찬가지여서, 리베카 솔닛은 “우리는 스스로가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이야기가 우리를 만들므로” 단순히 이야기를 찬미할 게 아니라 회의하고 성찰하며 “보다 넓은 세상에 관계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한 자신의 예술로 “전쟁과 불의를 초래하는 속박된 삶의 방식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될 무언가를 선물”(구스타프 메츠거)하기를 바라고, “팔릴 만한 작품의 창작이 아니라 행동에 기반을 둔 예술의 부활”을 이룬다. 그들이 말하는 예술은 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는 똑같다. 예술이란 온몸으로 밀고 가는 것이라는 사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실이다.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