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되, 낮고 느리게 부른다. 팔을 힘주어 내뻗기보다는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부른다. 듣다 보면, 기필코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겠다는 힘이 거부할 수 없는 밀물의 힘으로 스며든다.
1995년에 결혼을 하고 신혼의 작은 집을 서울 강북의 북한산 아래에 장만하여 살았는데, 그 무렵에는 동네마다 작은 서점들이 있었다. 한 그루 나무 같은 곳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우이동 깊숙한 골짜기에 있던 글목서점이다.
동네의 작은 서점이 그렇듯이 참고서도 팔고 인기 있는 책들도 파는 곳이었는데, 문학과 사회과학 책들도 많아서 일부러 찾아가곤 했다. 실은 그 서점의 여주인이 오목도 잘 두고 바둑도 잘 둬서 한 수 배우러 가기도 했고, 또 사실은 지금은 문단과 거리를 멀리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손경목 선배가 있어서 함께 문학?은 아니고, 그 무렵부터 서서히 유입되기 시작한 저 서유럽의 강력한 문화, 즉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축구경기를 함께 보고 함께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 때문에 자주 갔었다. 가 있다 보면 저녁도 같이 먹게 되는데, 근처의 글 쓰는 사람들, 언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따금 밤 늦게까지 어울려서 그 비좁은 동네 서점에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포크 뮤지션 인디언수니
그 중 한 사람이 소설가 한강이다. 1994년에 등단을 해 이미 문학계와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여수의 사랑>을 펴낸 어엿한 신예작가 한강은 별로 말도 없이, 흡사 오규원 시인의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은’ 모습으로 등받이도 없는 까만 의자에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별 말 없이, 다른 사람들의 다소 과도한 말들의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저, 먼저 갈게요” 하고는 고요히 나가곤 했다.
그때, 남은 사람들은 한강이야말로 장래의 가장 미련한 작가, 달리 말하여 우직한 작가, 강조하건대 밤새 모니터를 응시하며 한 시대의 상처를 제 몸의 상처로 짓이겨 피로 물든 문장으로 직조해낼 작가가 될 것이라고, 그녀가 가만히 나간 뒤에 소리를 낮춰 말하곤 했다. 전혀 비문학적이고 비논리적인 말이지만, 그때 그 동네 서점의 추운 겨울에 모여든 사람들은 말 없는 자가 끝까지 말을 하고, 힘 없는 자가 끝까지 버티는 게 아닐까 하고 한강을 보며 생각했었다.
그 외적 결실이 <채식주의자>다. 동시에 기억해야 할 작품은 <소년이 온다>이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채식주의자>에 의하여 <소년이 온다>도 다시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된 작품이지만, 이미 발간 때부터(2014년 5월 초판 발간) 한국문학의 핏빛 상흔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표지
5·18 광주를 기록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
폭력적 세계를 날카롭게 묘사한 이 두 작품을, 피맺힌 단어 하나 응어리진 문장 한 줄을, 피륙을 짜듯이 써낸 한강은 수상 직후 가진 귀국 인터뷰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그냥 글을 써야 한다. 상황이 정리되면 최대한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 다음 작품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단호한 결의는 2007년 작 <채식주의자>와 그로부터 7년 뒤에 발간된 <소년이 온다>를 꼼꼼히 읽는 순간, 단번에 신뢰하게 된다. 이 소설들은 가장 강렬한 핏빛의 모국어로 쓰여졌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그해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극, 참상, 그리고 죽음의 기록이다. 마지막까지 광주의 새벽을 지키고자 했던 소년, 그 아이의 죽음과 주변 사람들의 상처가 비통한 문장으로 되새김질되고 있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차라리 상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삶들이 한강의 얼룩진 문장 사이에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실로 참담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가장 강렬한 문장, 즉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라는 애틋한 말들이 그 후로도 지속된 이 사회의 변주곡이 되었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기록된 작가 후기(에필로그)에서 한강은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6쪽)고 적고 있다.
다만 그것으로 끝이었던가. 그해 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그 후로도 메르스 사태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있었고, 19살 청년의 죽음이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207쪽) 반복되고 있다. 피멍이 다시 덧나고 도지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 측면을 예리하게, 그러나 애틋하게 어루만지는 소설 <소년이 온다>는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하려는 독자들에게 필독의 의무를 부여한다.
‘살인마 전두환을 처단하라’는 전단지
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읽다가 멈칫하고는 여러 번 다시 읽고는 마음이 먹먹해진 장면은, 서울로 올라와 출판사 일을 하면서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 도시를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하는 중에 큰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몇 명의 학생이 뛰쳐들어와 전단지를 날리고, 잡혀가고, 그런 중에 그녀 앞에 떨어진 전단지, ‘살인마 전두환을 처단하라’는 전단지를 보는 순간,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는다. 살인마 전두환. 그렇다. 이 자는,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살인마다. 나는 <소년을 온다>를 읽으면서 살인마 전두환, 이 글자에 전율했다.
지난해 이맘때, 나는 이 지면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계속 불리어질 것이라고 썼다. 해외 곳곳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퍼져나가는 이 노래의 물결에 대해서도 썼다. 그럼에도 1년 뒤, 올해의 5월에도 이 노래는 합창이냐, 제창이냐 하는 논란에 휩싸였다. 제창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여전히 교묘한 간계들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점에서 광주는 현재진행형이다. 동시에 이 노래는 수십 년 전의 어느 고립된 도시를 위한 송가가 아니라, 한강이 증언하듯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반복되는 수많은 비극들, 그 장소들, 그 사람들, 그 상황들 속에서 계속 불리어진다.
한강의 낮은 목소리처럼, 한강의 피로 물든 소설처럼,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인디언수니다.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하였고 하와이로 가서 인디언음악을 공부한 포크 뮤지션이다. 2006년에 1집 음반 <내 가슴에 달이 있다>를 발표하였고, 2008년에 2집 <비오는 날의 해바라기>, 2011년에 3집 <노스탤지어>를 꾸준히 발표해 왔다.
생명의 노래, 평화의 노래, 자유의 노래를 부르는데, 일부러 목소리에 힘주어 강건하게 부르기보다는 가만히 속삭이는, “저, 먼저 갈게요” 하는 한강의 목소리처럼 부른다. ‘내 가슴에 달이 있다’, ‘나무의 꿈’, ‘붉은 감’ 같은 노래들, 그리고 듣다 보면 오랜 상처의 들판이 휑하니 눈에 보이는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고’ 같은 노래들을 인디언수니는 가만히 부른다.
인디언수니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추모의 현장에서도 부르고, 기억의 장소에서도 부르고, 저항의 상황에서도 부른다. 부르되, 낮고 느리게 부른다. 팔을 힘주어 내뻗기보다는 가만히, 가만히, 가만히 부른다. 듣다 보면, 기필코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겠다는 힘이 거부할 수 없는 밀물의 힘으로 스며든다.
제주도의 강정 포구,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차가운 겨울 바다, 거룩하게 밀려와 구럼비바위를 핥는 파도, 그 위에 홀로 서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인디언수니를 검색하여 들어보라.
아, 이 노래는 참으로 슬퍼하는 자들이 지금 막 상처를 입고 애통해 하는 자들을 위하여 끝까지 낮은 목소리로 끝까지 계속 부르겠구나,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역사의 지평 위에서 아득하게 제창되는 곡이구나, 그렇게 실감하게 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인디언수니의 낮고 느린 노래를 듣는 순간 어느덧 자신이 이 노래를 몸으로 따라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