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가짜약을 줘도 호전되는 ‘플라시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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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돈이 중요한 자본주의에서는 점점 후자가 강해진다. 어느새 의술은 의료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대치된다. 이쯤되면 의료는 공공재 성격을 잃어버리고 경제재가 된다. 병원과 약국, 그리고 보건당국 간에는 커넥션이 형성될 수도 있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를 둘러싼 한 남자의 투쟁기다. 전기기술자인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 분)는 마약과 여자에 환장하고 로데오를 즐기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블루칼라다. 전기 감전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그는 혈액검사 중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임상실험 중인 AZT를 처방받기를 원하지만 병원은 거부한다.

AZT 처방을 받으러 멕시코로 간 우드루프는 AZT가 독성이 강할 뿐 AIDS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데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보다는 코카인을 끊고, 비타민과 단백질제를 먹어 면역력을 키우고, 독성이 약한 항바이러스제로 치유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우드루프는 멕시코에서 이 약들을 밀수해 AIDS 환자들에게 판다. 약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아예 회원제를 만든다. 그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다. 환자들이 병원을 외면하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찾자 보건당국이 그냥 둘 리 없다. 미국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하고 FDA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약을 팔 수 없도록 법을 바꾼다.

[영화 속 경제]<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가짜약을 줘도 호전되는 ‘플라시보 효과’

달라스 머시 병원은 우드루프에게 AZT의 위약 대조실험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위약 대조실험이란 한 환자군에는 진짜 약을, 다른 환자군은 가짜약을 줘서 진짜약을 처방한 환자군에서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실험이다. 통상 환자들은 ‘약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이런 기대 때문에 가짜약을 줘도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위약효과(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때문에 이 같은 위약효과를 제거해야 신약의 효용성을 제대로 알게 된다. 위약 대조실험을 할 때는 약을 투입하는 의사들조차도 모른다. 의사가 진짜약과 가짜약을 사전에 안다면 환자의 상태를 평가할 때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소비자의 구매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천연비누’를 쓴다면 왠지 피부에 더 좋을 것 같다. ‘유기농 우유’나 ‘유기농 콩’을 먹으면 몸에 아주 좋을 것 같다. 천연소재 비누와 화학성분의 비누, 유기농 콩과 일반 콩이 실제로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서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를 소비하는 소비자는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천연소재 제품과 유기농 식품은 훨씬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선크림을 바르면 정말 피부가 까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다만 선크림을 발랐다는 자체가 위안을 줘서 마음껏 태양 아래 뛰어놀 ‘용기’를 준다. 횡성 한우나 법성포 굴비, 기장 미역이나 제주 감귤이라면 동종 최상급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다른 지역 한우나 굴비, 미역과 비교해보면 품질의 차가 실제로는 없거나 있어도 미세할 가능성이 크다.

위약 대조실험에 참여하라는 병원 측의 권고를 우드루프는 거부한다. 자신이 받는 약이 가짜일지도 모르는데 가짜인 약을 먹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돈을 줄 테니 AZT를 달라”고 외치지만 FDA의 승인을 받지 않는 약은 병원도 처방할 수 없다. AZT는 독성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FDA는 이 약만 AIDS 환자들에게 처방하도록 한다. “명품시계를 차고 와서 환자를 위해 떠드는 척하는 사람이 치료에 대해 알까요”라고 묻는 후배 의사에게 선배 의사는 답한다. “제약회사 직원일 뿐이잖아. 그들에게는 그냥 비즈니스야.”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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