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한국은 ‘호랑이 경제’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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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는 ‘호돌이’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엠블럼도 호랑이다. 호랑이는 오랫동안 한국의 상징이었다. 두려운 존재지만 때론 친구였고, 때론 신령스런 영물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땅에 호랑이는 없다. 일제 식민지 치하, 일제는 조선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표면적 이유는 해수(해로운 동물)를 박멸한다는 것.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 속내는 조선의 얼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박훈정 감독의 영화 <대호>는 지리산 호랑이 얘기다. 1925년 일본 고관 마에조노는 귀국 전에 대호를 손에 넣고 싶어한다. 매혹적인 대호의 가죽은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마에조노는 일본군과 조선 포수대를 다그친다. 대호를 쉽게 잡을 수 없자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 날렸던 천만덕(최민식 분)을 끌어들인다. ‘잡을 것만 잡는’ 천만덕은 총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다. 그에게는 아픈 가족사가 있다. 하지만 시대는 천만덕이 사냥을 그만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들의 죽음 이후 그는 다시 대호와 맞닥뜨린다.

[영화 속 경제]<대호>-한국은 ‘호랑이 경제’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한반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포획된 기록은 1921년 경북 경주다. 이후 호랑이는 사라졌다. 호랑이는 산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다. 호랑이로 불렸던 한국 경제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급속히 발전하는 국가의 경제를 흔히 ‘호랑이 경제’라고 부른다. 맹렬하게 발전하는 것이 한 마리의 호랑이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1980년대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4개국은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렸다. 이들 나라의 성장은 2000년 중반까지 다른 개도국들을 압도했다. 외신들은 한국 경기가 좋아지면 ‘호랑이가 돌아왔다’고 썼고, 경기가 나쁘면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고 썼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을 ‘한겨울의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혼을 잃은 호랑이’라고 썼다. 한국 경제는 수년간 2~3%대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월 뉴욕에서 가진 한국 경제 설명회에서 “한국은 과거가 화려했던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다. 계속해서 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응수했다.

아일랜드는 2000년대 초반 아시아의 4대 호랑이에 빗대 ‘켈트의 호랑이’로 불렸다. 금융부문의 규제완화를 앞세워 가파른 성장을 일구면서 유럽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일랜드는 금융위기로 2010년 국가부도를 맞았지만, 지난해 다시 9.2% 성장을 일궜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통신(IT)기업 유치에 성공하면서 고용과 성장이 반전됐다. 제퍼리증권은 “아일랜드는 ‘포요하는 호랑이’”라며 다시 치켜세웠다.

핀란드는 2000년대 초반 고속성장을 하며 ‘북유럽의 호랑이’라 불렸다. 하지만 노키아가 문을 닫고 최대 교역국인 러시아가 침체에 빠지면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남미 호랑이도 있다. 제조업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멕시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3년 멕시코를 ‘아즈텍 호랑이(Aztec Tiger)’라고 표현했다. 멕시코는 정치 안정과 자유무역협정(FTA) 등 적극적인 시장개방 정책에 힘입어 최근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필리핀을 ‘떠오르는 호랑이(rising tiger)’라고 극찬했다. 필리핀은 최근 6년간 연평균 6%가 넘는 고속성장 중이다. 한때 필리핀은 ‘아시아의 환자(Asia’s sick man)’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대호>의 주연을 맡은 영화배우 최민식은 “<대호>에서 조선호랑이는 민족의 정기일 수도 있고, 우리가 지켜내야만 하는 순수한 정서, 자존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도 한국이 지켜내야 할 한국적인 역동성의 상징이자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한국 경제의 호랑이는 다시 포효를 할 수 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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