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책임 외면한 ‘회색지대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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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양이 유출된 ‘파나마 문서’. 세계 각국 실세들의 조세회피 정보가 들어 있기에 대단한 파문이 일어날 줄 알았건만 한국은 뜻밖에 조용하다. 대중은 낯선 것, 회색지대에 놓인 것에 대해서는 반응을 유보하곤 하기 때문인가 보다.

절세는 대표적인 회색지대의 영역이다. 사실 돈이 많은 이들은 그 돈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비법과 수단을 지니고 있고, 이를 모두가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기에 이런 사건이 터져도 다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멍하니 바라보기 쉬운 일이다.

돈은 늘 기업과 얽혀 있다. 이미 국제적으로 볼 때도 법인세율은 꽤 낮은 편인데, ‘경제 활성화’라는 마법의 주문은 늘 효과적으로 국민을 설득한다. 세금 부담으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수익이 사회로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은 잘 먹힌다. 무한경쟁의 이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니 기업을 귀찮게 말고 더 힘을 실어주자며 동정표를 얻는다.

[IT 칼럼]사회적 책임 외면한 ‘회색지대 경영’

모든 법이 그렇듯 법인세에도 허점이 있게 마련이고 이 틈을 파고든다. 각종 세금 우대 제도로 공식적으로 봐주는 정책적 감세의 혜택 또한 적지 않다. 어느덧 우리의 실효세율은 OECD 최하 수준으로 내려가 있다. 비과세 금융상품이나 시설 리스 등 과세 표준을 줄이는 꼼수도 널리 쓰인다. 머리가 좋다. 평범한 우리에게 이런 머리가 있을 리 없으니 파나마 문서도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다.

OECD도 예의주시하는 ATP(Aggressive Tax Planning)는 입장에 따라서 때로는 공격적 조세회피로, 때로는 적극적 절세로 번역된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도 회색지대에 있다. 절세가 교양이 된 시대답다.

주주 앞에서 세금은 비용이 된다. 마치 공장을 어디에 설립하고, 판매를 어디에서 하며, 또 고용은 어디에서 하는지가 기업의 자유이듯, 세금을 누구에게 낼지조차 기업 마음이라는 것.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고향은 황폐해져도 기업은 살아남으면 그만이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일본에서는 쇼핑몰로 성업 중인 아마존 재팬이 법인세를 내지 않아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아마존은 유럽에서도 지금 한창 씨름 중이다. 다국적기업은 세계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무형자산 명목으로 조세피난처의 자회사에 이전시키곤 한다. 특히 IT기업은 지적재산권 사용료 등을 라이선스 양도하는 식으로 편한 곳으로 옮겨 놓을 수 있기에 손쉽다. 구글과 애플 등 유명 IT기업의 단골 절세, 또는 조세회피 수법도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이것이 불법이냐고 물으면 합법적이니 괜찮다 할 것이다. 나름 다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다.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통해 국민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것.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인가.

파나마 문서 사건 이후 피케티 등 경제학자 300명은 조세 회피를 규탄하며 공동성명을 냈다. 세계는 불투명해지고 점점 불공평해지니 그 끝이 두려울 법하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 큰 의지가 없어 보인다. 조세피난 꼼수의 본고장은 미국, 유령회사의 절반은 영국령이다. 영미 문물을 유독 좋아하는 이 땅의 기업가들, 그 회색지대 경영조차 선진적 기업 경영이라 감탄하곤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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