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걸 굿 걸
수전 J 더글러스 지음 이은경 옮김·글항아리·2만3000원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는 여성이다. 여성 국무장관은 더 이상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다. TV 드라마에는 여성 변호사, 여성 외과전문의, 여성 경찰국장, 여성 판사가 등장한다. 리얼리티 TV쇼에서는 여성 참가자들이 남성 참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불개미, 이구아나와 사투를 벌인다.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여성의 힘은 더 이상의 성차별은 없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학자 크리스타니 호프 소머스는 여학생들에 밀린 남학생들이 새로운 ‘제2의 성’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여성의 상위 다섯 가지 직업은 여전히 비서, 간호사, 초등 및 중학교 교사, 계산원, 상점 판매원이다. 현실에서 CEO나 고위공무원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여전히 현실에서 여성은 불평등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대중매체가 퍼뜨린 여성의 삶과 현실 속 여성의 삶의 괴리는 어떤 부작용을 낳을까?
지은이는 지금의 상황이 1950~1960년대의 상황과 정반대라고 진단한다. “당시에는 해변에서 와투시 춤(아프리카 와투시 족의 토속 춤)을 추는 관능적이지만 아둔한 여자들, 또는 온종일 집을 지키며 미스터 클린의 도움으로 바닥을 청소하는 전업주부들의 모습으로 인해, 그즈음 폭발적인 숫자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평화봉사단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참여했던 사실이 가려져버렸다.
당시 대중매체가 퍼뜨린 환상은 여성들의 포부와 열망이 실제로는 변화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의 대중매체가 현실에 뒤처졌다면 오늘날의 대중매체는 현실을 앞서 나간다. 현실에서 남녀평등은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대중매체 속에서 남녀평등은 실현된 엄연한 사실이 됐다. 이러한 착시 속에 페미니즘은 시대착오적인 운동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지은이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매체가 조롱하고 희화화한 페미니즘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슈퍼우먼이 되지 못해 홀로 자책하거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저주하는 대신 모순된 요구, 권리의 박탈, 사회의 부당함 앞에 다시 뭉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