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녀(혹은 그). 다음 생에 태어나도 서로 알아보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영원한 사랑은 영원한 테마다. 사랑이란 불꽃처럼 피었다가 사그라지는 한여름 밤의 폭죽 같다. 그 뜨거운 절정의 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꼭 움켜쥘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곽재용 감독의 <시간이탈자>는 32년의 차이를 두고 살아가는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다. 보신각 타종 직후인 1983년 1월 1일, 고등학교 음악교사인 지환(조정석 분)은 소매치기의 칼에 찔려 의식을 잃는다. 막 보신각 종을 타종한 2015년 1월 1일. 강력계 형사 건우(이진욱 분)도 뒤쫓던 범인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32년 간격을 두고 같은 병원 침상에서 생사를 건 수술을 받던 두 사람은 꿈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건우는 32년 전인 1983년 지환의 연인 윤정이 살인을 당했다는 사건기록을 접하게 된다. 아울러 윤정이 근무하는 고교의 학생들이 연쇄살인을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지환은 건우를 통해 연인 윤정과 아이들의 죽음을 막으려 한다. 건우는 지환을 통해 연인 소연을 지키려 한다. 두 사람은 자신의 연인들을 지킬 수 있을까.
![[영화 속 경제]<시간이탈자>-변화가 변화를 낳는 ‘시간의 승수효과’](https://img.khan.co.kr/newsmaker/1175/20160510_54.jpg)
<시간이탈자>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다. 타임슬립(Time Slip)이란 시간을 미끄러진다는 뜻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것을 말한다. 타임머신과 같은 기계장치를 타고가기보다 무의식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시간이동하는 것을 통상 가리킨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미드나잇 인 파리> <어바웃 타임> 등이 잘 알려진 타임슬립 소재 영화다.
타임머신이든 타임슬립이든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특징이 있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 혹은 미래가 바뀐다는 것이다. 과거의 자그마한 변화는 현재 혹은 미래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변화가 변화를 낳고, 그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낳기 때문이다. 일종의 ‘시간의 승수효과’다.
승수효과란 어떤 경제요인의 변화가 다른 경제요인의 변화를 가져와 파급효과를 낳고, 그 파급효과가 또 다른 파급효과를 낳는 것을 말한다. 최종적으로는 최초 변화의 몇 배의 효과를 나타낸다. 승수효과를 증명하는 이론이 ‘승수이론’이다. 승수효과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존 메이나드 케인즈다. 케인즈는 ‘투자승수’를 설명했다. 정부가 100억원을 쓰면 물건을 판 A는 100억원의 소득이 생긴다. A가 100억원의 소득 중 30억원을 저축하고 70억원어치를 B에게서 사들이면 B가 70억원의 소득이 생긴다. B가 이 중 30억원을 저축하고, 40억원을 C에게 쓰면 C는 40억원의 소득이 생긴다. 최초에 쓴 돈은 100억원이지만 A와 B, C가 얻은 사회 전체의 소득은 ‘100억원+70억원+40억원=210억원’이 된다.
정부 지출의 증가가 국민소득을 얼마나 창출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정부지출승수’라 부른다. 정부가 하반기에 쓸 예산을 상반기에 미리 써버리는 ‘조기집행’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먼저 쓸수록 돈이 돌 기회가 더 생기기 때문에 정부지출효과는 커진다.
수출의 증가가 소득 증가를 얼마나 가져오는가를 알려면 ‘무역승수’를 보면 된다. 무역승수는 승수효과를 국제무역 영역으로 끌어온 것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무역승수가 클수록 수출이 국민소득 증가에 기여하는 힘이 크고, 무역승수가 작을수록 수출의 기여가 작아진다.
더 먼 과거로 돌아갈수록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신라시대 때 발생한 조그마한 일은 1000년 뒤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또 중요한 과거 사건을 건드릴수록 현재와 미래의 변화도 심할 것이다. 지환은 32년 전 얼굴 없는 살인마와 사투를 벌인다. 그를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에 따라 2015년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