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을 가다
장 지글러 지음·모명숙 옮김 갈라파고스·1만8000원
“혁명가라면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친구 바이데마이어에게 이렇게 썼다.
지은이는 현 시대를 세계적인 금융자본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의 전제정치 시대라고 말한다. 올리가르히는 소수자에 의한 지배, 즉 과두정치를 뜻하는 그리스어 올리가키에서 유래한 단어다. 전 세계의 올리가르히들이 공적 담론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들은 ‘도덕적 명령’을 놓치고 말았다는 게 지은이의 진단이다. 이 ‘도덕적 명령’은 ‘남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성은 내 안의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칸트의 인식을 토대로 한다. 도덕적 명령은 결국 연대성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아가고 성장하고 발전한다. 관계의 비밀이 존재의 비밀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도덕적 명령이 상실된 ‘올리가르히의 시대’에서 연대성에 대한 희망은 그저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은이는 마르크스의 저 말을 빌려 “아직 충분히 표현하지 않은 새로운 의식이 오늘날 유럽에서, 그리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 발전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극도의 주의가, 즉 최대의 정신적 경계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은이는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다. 자신은 지식인으로서 그릇된 세계질서를 머리로는 거부하지만, 그 질서에 잘 적응했으며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 그 질서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동시에 지식인이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탐색한다. 지은이는 지식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지식은 인간을 해방시키면서 동시에 억압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탐색하는 지식인은 전자로서의 지식을 좇는 자다.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소외, 억압, 퇴보 등의 전략에 쓰인다면 이는 ‘틀린’ 것이다. 반면에 인간의 해방, 자결, 인간화 등을 촉진시킨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다.” 지은이는 볼테르, 루소, 마르크스, 막스 베버, 루카치 등 사상의 거인들의 시대정신을 추적하면서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