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는 저급한 정치집단과 선거제도의 결함과 한계를 뛰어넘는 유권자의 승리다. 그런 유권자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의 승리다. 박근혜 정권을 비롯한 여당과 야당은 이러한 현명한 국민에 의해 함께 심판받았다.
이번 4·13 총선 결과가 예측에서 크게 벗어난 것을 평가하면서 가장 와 닿는 표현은 ‘상황은 산수인데 고차원 수학으로 풀려 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의 생각이나 판단을 상식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면 될 것을, 온갖 변수를 잔머리를 굴려가며 찾아서 그것을 정치공학으로 적용하다 보니 엉터리 예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산수에 해당하는 상식적 상황과 판단은 어떤 것이었을까?
첫째는 투표라는 정치행위를 통해 정권이나 정당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과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를 유권자가 정확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 정당 정치인들의 분열과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막장드라마 같은 행태는 국민들이 정치혐오감을 가질 정도로 선거의 질을 떨어뜨렸지만, 유권자들은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각 당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정책 능력에 따라 투표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 것은 박근혜 정권의 중요 정책과 국정수행 능력이 심판을 받은 것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 13일, 서울 교동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투표절차를 밟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총선 결과, 예측에서 크게 벗어난 이유
그 중에서도 민생정책이 핵심이었는데, 경제파탄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려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노동관계법 개악 시도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강력한 거부권 행사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모든 행정력과 예산을 동원하여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노동개혁을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 재벌과 대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쉬운 해고, 임금 삭감, 비정규직 양산을 내용으로 하는 노동관계법 개악 을 종편 등 방송, 언론을 동원하여 치졸한 방식으로 시도했으나, 국민은 현혹되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해준 것이 이번 선거였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21세기는 복합을 넘어 융합의 시대이다. 다면화와 다양성의 존중이 민주주의의 요체이고, 그것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진전이며,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을 벌이는 데 몰두했다. 하물며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 가족의 부정적인 과거 역사를 고의로 은폐하거나 왜곡하려 하는 불손한 저의를 노골화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권력을 이용하여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과정에 소신도 양심도 버리고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며 앞장섰던 비겁한 정치인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섰던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의 낙선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 수준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개성공단의 폐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어떠한 정치적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개성공단만은 흔들림 없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남북 사이의 합의다. 개성공단을 조성하면서 이러한 어려운 합의를 한 것은 개성공단이 갖는 우리 민족의 특수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그것은 평화적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적 염원의 발현이요, 남북한이 현실적으로 직면한 심각한 경제문제의 돌파를 위해 개성공단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국민의 염원을 무시하고 자기의 정치적 이득을 계산하며 개성공단을 폐쇄했으니, 국민들의 실망이 컸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식적 판단이 이번 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어날 수가 없는 사고가 일어났고, 실종된 대통령의 7시간을 비롯하여 정부 대응의 온갖 의혹이 사고를 사건으로 만든 것이 세월호 참사다. 그러면 그 의혹을 자세히 밝혀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통해 안전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국가의 몫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철저히 외면했다. 아니 오히려 앞장서서 방해했다.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에서부터 특별법 제정, 특검 실시 등 스스로 약속한 상식적 절차나 집행마저도 방해하거나 무시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세월호 참사를 일부 진보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뒤집어씌웠다. 다수 국민은 침묵하는 것 같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참사 2주기를 앞두고 기념 배지의 주문이 쇄도해 공장 가동을 늘려야 했다든가, 추모행사가 열리는 당일에는 날씨가 아주 나빴음에도 예상밖의 많은 인파가 광화문 일대를 덮었던 것 등이 국민들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판단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여야 정당들은 국민들의 그 속마음을 모르고 무시하거나 거리두기를 하는 꼼수로 대응을 했으니, 선거 결과가 그것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선거 결과로 나타난 절묘한 황금분할
청년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련 정책도 청년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 등 청년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아니라 오히려 임금피크제 등을 통한 세대 간 갈등 조장은 청년들을 더 화나게 했고, 결국 청년들을 투표장으로 몰려가게 만들었다. 20~30대 청년의 적극적 투표 참여가 새누리당 후보를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거나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이 다수 국민의 정서에 부합한다는 판단은 아주 잘못된 것임이 판명되었다. 특히 전교조와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을 통해 보수세력의 결집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부 수구세력을 제외한 합리적 보수주의자들도 건전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를 모를 리 없으니, 이번 박근혜 정권의 오판은 선거 패배를 자초한 원인이 된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테러방지법의 무리한 통과나 북한 동포들의 집단탈북 사건을 절차나 관행을 무시하고 본인들의 인권마저 짓밟으면서 투표일 직전에 전격 공개하는 등 깜작 이벤트로 북풍을 조장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상식적인 정치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대응도 돋보였다.
둘째로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거참여 형태가 많이 성숙되었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 내내 종편 등 수구언론이 보여준 행태는 정말 목불인견이었다. 정책의 차이나 해설 등은 없고 오로지 선거공학에 의한 자의적 예측을 일삼으며 정부 정책을 앵무새처럼 선전하는가 하면, 선거 관련 사건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보도함으로써 정치 허무주의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런 내용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있는 서민들에 대한 염려도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런 왜곡 편파보도가 큰 영향력이 없음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야당이 분열하여 새누리당 심판이 어려워지자 누구도 예기치 못한 지혜를 발휘하여 될 만한 후보 몰아주기와 지지하는 당에 대한 교차투표를 함으로써, 누구를 당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여당을 떨어뜨리는 투표를 각자가 했으니, 얼마나 현명하고 대단한 일인가?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주는 집단지성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저급한 정치집단과 선거제도의 결함과 한계를 뛰어넘는 유권자의 승리다. 그런 유권자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의 승리다. 그것이 ‘산술적 상황’, 즉 건강한 상식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상식의 승리다. 박근혜 정권을 비롯한 여당과 야당은 이러한 현명한 국민에 의해 함께 심판받았다. 선거 결과로 나타난 이 절묘한 황금분할을 보라. 누구도 승자나 패자가 아니라 앞으로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또 한 번 골고루 준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누가, 어느 당이 또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비상식적 행태로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무시하는가를 정확하게 판단할 것이다. 부디 우리 정치인들의 건망증과 뻔뻔함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