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들에게 갑질은 충분히 하셨습니까? 물론 갑질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4년에 한 번 겨우 10여일 남짓 국민이 마음껏 갑질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인데, 그냥 맥없이 보내 버렸다면 서운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총선이 끝났네요. 곧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겠군요. 투표는 하셨습니까? 선거 결과는 마음에 드시는지요?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됐던가요? 그 후보가 당선되니 기쁘십니까? 혹은 낙선돼서 화나고 안타까우십니까? 죄송합니다. 느닷없이 여러 질문들을 쏟아내서요. 선거 결과를 보고 나니 혼자서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이 갑자기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바로 유권자 여러분에 대해서요. 투표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절묘한 민심을 보여준 유권자 여러분 말입니다. 아!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한 유권자 중 한 명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질문들은 어쩌면 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혼자만의 머릿속에서는 뾰족한 답안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드리고 같이 생각해 봤으면 싶네요. 그리고 여럿이 함께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더 좋은 답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고요. 참, 한 가지 더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 질문이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거든요. 아직도 꽤나 많은 질문들이 남아 있답니다. 그래도 양해해 주시겠죠? 그럼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무서우면서 절묘한 민심
선거운동 기간 중 유권자로서 후보자들에게 갑질은 충분히 하셨습니까? 물론 갑질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4년에 한 번 겨우 10여일 남짓 국민이 마음껏 갑질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인데, 그냥 맥없이 보내버렸다면 서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고 선거운동 하느라 목이 다 쉬게 연설하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고생하는 후보자들에게 괜한 시비나 걸고 호통치는 천박한 갑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고객들은 물건 하나 사더라도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보고 까다롭게 구매하잖아요. 경쟁사 제품과 품질 비교도 하고, 인터넷 검색해서 다른 소비자들의 사용기도 살펴보고, 또 마지막으로는 가격도 비교해보고 제일 싼 데 골라서 구매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세상 아닙니까? 후보자들도 이렇게 잘 따져보고 까다롭게 골랐는지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정책과 어떤 공약을 말하는지? 그런 말들이 다 현실성 있고 믿을 만한 이야기인지 이렇게 깐깐하게 따져보는, 그런 갑질을 정치 고객인 유권자로서 충분히 하셨는지 묻는 겁니다. 이렇게 제대로 갑질을 해둬야 선거가 끝난 앞으로 4년 동안 예전 같은 정치 호갱님이 아니라 정치 고객님으로 계속 대우받고 살게 될 터이니 하는 소리입니다.

총선을 사흘 앞둔 4월 10일 서울 홍익대 앞에서 시민들이 한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잘못했다고, 사죄드린다고, 그러니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읍소하던 후보들은 어쩌셨나요? 마음이 흔들려 용서해 주겠다며 소중한 한 표를 던지셨나요? 온정을 베풀어 결국 그들을 살려주셨나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매번 선거 때만 되면 용서를 빌며 사죄했던 것 기억하고 계셨나요? 잘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 출마를 하지 말아야 정상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누가 누굴 도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의문을 품어보지는 않으셨나요? 국민들을 돕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건만 오히려 국민들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이 과연 정상으로 보이던가요? 그리고 선거에서 떨어진다고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무작정 살려달라고 읍소하는 모습은 또 어떻던가요? 출마하는 이유가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라고 사실상 커밍아웃 한 셈인데, 그래도 그들에게 흔쾌히 표를 주셨나요? 게다가 투표일 사흘 후면 진짜로 살려내야 했던 세월호 아이들의 2주기가 된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고 투표를 하셨나요? 자신들을 살려달라며 무릎 꿇고 읍소하던 그 사람들이 정작 세월호 아이들과 유가족들의 한 맺힌 울부짖음은 외면하고 심지어 윽박지르던 바로 그 정부와 정당에서 몸담고 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모르지는 않으셨겠죠?
소수 정당엔 왜 그리도 인색하셨나요?
정의당, 녹색당처럼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소수 정당에는 왜 그리도 여전히 인색하셨나요? 늘 정치를 독식해 왔던 거대 정당들에게 정치적 지지에 대한 사표(辭表)를 내고, 대신 사람들이 사표(死票)가 되리라 우려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결단력 있는 선택만이 더 좋은 정치의 사표(師表)가 되리라는 생각은 혹시 안 해보셨나요? 이동통신사는 득실 따져 잘 갈아타는 스마트한 고객이 거대 정당에 대한 지지는 왜 그리도 갈아탈 생각을 안 하시는 걸까요? 정치가 신앙도 아닌데 말입니다.
총선 사상 처음 치러진 사전투표의 투표율이 꽤 높았다지요? 그런데 행여나 거기에 개표 부정이 있을까봐 그 투표함을 지키겠다고 밤샘을 마다하지 않았던 청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괜한 걱정에 부질없는 짓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신 분들도 물론 많으셨겠죠? 하지만 그런 분들조차도 이 청년들이 결코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까지 차마 부정하지는 못하실 겁니다. 이 정부가 오죽 못 미더우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렇게까지 나섰겠습니까? 이런 일 잘 관리하라고 국민들이 세금 꼬박꼬박 냈건만 이게 또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습니다. 국민 노릇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대통령 이야기를 해볼까요? 우리 대통령이 별명이 참 많은 분인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좋은 별명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부·여당에서 아주 반기는 별명이 하나 있죠? 바로 ‘선거의 여왕’입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엄연히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이제 선거의 여왕으로서의 실력을 볼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대통령께서는 그런 법률적 제약 따위 이번 총선에서도 가뿐히 극복해버리신 것 다들 알고 계시죠? 여당의 상징색인 빨간 옷을 입고 사방팔방 지방 나들이에 분주히 나섰던 대통령은 집요하게 투표 전날까지 야당 심판을 주문하며 선거 개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더군요. 그동안 정부·여당을 투표로 심판하자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메시지는 처음 접해봤을 텐데, 많이 당혹스럽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놓은 총선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저를 포함한 유권자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