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달라도 너무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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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싸움’ 대신 ‘여 대 여’, ‘야 대 야’, ‘일여다야’ 등 온갖 전선 등장

20대 총선은 독특했다. 총선이라면 원래 여당 대 야당의 전선이 뚜렷했다. 매일같이 여당과 야당이 설전을 벌이고, 매스컴은 이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달랐다. 여당 대 야당 전선은 희미해지고 일여다야(一與多野), 여(친박) 대 여(여당 성향 비박 무소속), 야(더불어민주당)대 야(국민의당) 등 온갖 전선이 모두 등장했다. 이들 다양한 전선이 단순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총선 판도를 좌우하는 국면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20대 총선은 독특한 양상을 띠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비전과 공약으로 싸움을 벌이던 역대 총선과 달리 이번 총선은 여야 간 전선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공천과정에서 여당은 친박과 비박이 싸웠다. 야당은 공천 전에 이미 대거 탈당이 이뤄지면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진 셈이 됐다. 더민주 내부에서도 친노와 비노가 공천과정에서 힘겨루기를 했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번 총선은 여야 양당 지도부가 서로 엇박자를 내며 갈등하는 가운데 선거가 치러져 모두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내부 갈등으로 뒤죽박죽이 된 여권과 야권의 후보는 총선 과정에서 여권 후보끼리, 야권 후보끼리 총구를 겨누는 상황을 맞이했다. 누가 진짜 적이고 누가 진짜 아군인지 모르는 형국이 된 것이다. 황태순 평론가는 이 같은 이번 총선의 현상을 ‘만인 대 만인’으로 표현했다. 여야가 아니라 각 지역구별로 제각각 뒤엉켜 싸우게 됐다는 것이다. 홍형식 소장은 “차기 대권을 준비하는 정치인이 직할부대를 구축하면서 이번 총선은 정당 선거와는 별건으로 친박계, 김무성 대표계, 유승민계, 문재인계, 비노계, 안철수계 등 세력이 서로 뒤엉킨 선거가 됐다”고 평가했다.

20대 총선의 사전투표가 시작된 4월 8일 인천공항 3층 출국장에 마련된 사전투표장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대 총선의 사전투표가 시작된 4월 8일 인천공항 3층 출국장에 마련된 사전투표장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여야 모두 본거지인 대구·광주서 고전
수도권에서는 대부분 일여다야 전선이 형성됐다. 역대 총선이라면 야당 후보들이 여당인 새누리당 후보를 공격하고, 여당 후보가 이에 맞서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기간 내내 야권 단일화를 놓고 야당인 더민주와 국민의당 후보가 서로 감정싸움을 벌였다. 관심은 이 감정싸움에 쏠렸다. 여기에다 더민주와 정의당 후보 간 야권 단일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야당끼리 치고받는 선거가 이뤄졌다.

여야의 텃밭에서는 역대 총선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난전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는 독특하게도 여야가 모두 자신들의 본거지인 대구와 광주에서 고전했다”고 말했다. 총선 기간 중 여야 지도부는 여당 대 야당이 맞붙은 지역구뿐만 아니라 여여(與與)나 야야(野野) 대결 지역구에도 지원유세를 해야 했다.

여당 지도부는 텃밭인 영남을 찾아가 지원전을 벌였다. 공천 전에는 대구 동구을의 유승민 의원과 이재만 전 동구청장의 대결이 눈길을 끌더니, 공천 이후에는 대구 동구갑의 정종섭 후보(새누리당)와 류성걸 의원(무소속)의 대결, 대구 수성을의 이인선 후보(새누리당)와 주호영 의원(무소속)의 대결 등이 계속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다 수십 년간 야당 후보를 뽑아주지 않았던 철옹성 텃밭인 대구에 더민주의 김부겸 후보(대구 수성갑)와 야당 성향 무소속 홍의락 후보(대구 북구을)가 약진하면서 새누리당은 수도권보다 대구지역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밖에도 부산·울산·경북 등지에서도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무소속 현역의원이 선전하면서 새누리당은 총선 기간 내내 안방 지키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제1야당인 더민주는 예전의 텃밭인 호남에서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반(反)문재인 정서를 타고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약진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며칠씩 호남에 내려가 선거를 지원했지만 한 번 돌아선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당내 일각에서는 수도권 선거에 집중해야 할 당 대표가 호남에 너무 치중한다는 반대의견도 나올 만큼 텃밭 민심의 이반은 심각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번 총선은 각 지역마다 전선이 모두 다르다”면서 “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충청은 충청대로,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전선이 다르게 형성된 독특한 선거”라고 말했다.

‘제각각 총선’의 이면에는 제대로 된 비전과 공약, 정책이 없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 심판을, 더민주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을, 국민의당은 양당 정치에 대한 심판을 부르짖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19대 총선만 해도 여야는 경제민주화를 놓고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야가 제대로 된 정책 대결의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역대 총선에서는 여야의 정책 대결 등 공중전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각 당의 후보가 제각각 자신이 알아서 각 지역의 공약을 놓고 상대 후보와 싸움을 벌였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이번 총선에서는 각 당에서 내놓은 대표 상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총선의 메인 이슈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형식 소장은 “역대 선거와 비교해볼 때 정책이 아예 실종된 선거”라고 평가했다.

20대 총선 ‘달라도 너무 다르네’

정책 이슈도 선거 스타도 보이지 않아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 데에는 더민주 김종인 대표체제의 선거전략이 독특한 역할을 했다. 이전 총선에서 제1야당은 한쪽으로는 여당을 매섭게 비판하고, 한쪽으로는 야권 단일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더민주는 든든한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이는 데 진력했을 뿐 매서운 야성을 보여주거나, 강력한 야권 단일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여당인 새누리당으로서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야당의 이념 성향을 공격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다만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 안보·경제·민생이 마비된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만약 총선이 친노 대 친박의 대결로 갔다면 야당이 계속 불리한 국면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들은 중앙당의 지원유세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예전 총선에서는 중앙당의 스타들이 지역구에 내려와 국면을 역전시키기도 했지만 이번 총선은 달랐다. 여당과 제1야당에서 뚜렷한 총선 스타가 없었다. 19대 총선에서는 박빙 지역마다 박근혜 대통령(당시 비대위원장)이 다니면서 우세국면으로 만들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그동안 ‘선거의 여왕’의 면모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서 뛰지 않은 첫 총선”이라고 평가했다. 새누리당에서는 박 대통령을 대체할 만한 총선 스타가 없었고, 제1야당에서는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가 제각각 보완 절충하는 지원유세의 모습을 나타냈다.

이번 총선은 여야 양당이 한때 자신의 정당에 몸담았던 인물이 서로 반대 당의 선거를 이끌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대위원이었던 김종인 대표가 더민주의 비대위원장으로 당 대표가 되어 선거를 진두지휘했고, 야당의 3선 의원이었던 강봉균 전 의원이 새누리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관심을 끌었다.

역대 총선과 또 다른 특징은 선거가 다가오면서 유동층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유동층은 선거에 소극적인 부동층과는 달리 선거에는 적극적이나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층을 말한다. 홍형식 소장은 “대부분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부동층과 유동층이 줄어든다”면서 “그런데 이번 총선을 보면 후반부에 유동층이 늘어나 선거 판도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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