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1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 내… 투표용지 33.5㎝로 길어져
4월 8일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27개다. 이 가운데 4·13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은 25개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은 21개, 한 곳에라도 지역구 후보를 낸 정당도 21개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총 22개 정당이 등록, 20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낸 것보다 더 늘어났다. 유권자들 모두가 길이가 33.5㎝에 달할 정도로 정당 이름이 빼곡한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게 된 것이다.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은 그만큼 넓어졌다. 하지만 각 정당 간 구분이 어렵기도 해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번 정의당·5번 기독자유당·6번 민주당
1번에서 4번까지인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까지는 비교적 익숙하다. 의석을 보유한 원내정당은 의석 수에 따라 기호를 배정받기 때문에 더민주를 탈당한 이윤석 의원이 입당해 원내정당이 된 기독자유당과 역시 더민주를 탈당한 신기남 의원이 입당한 민주당까지는 비례대표 선거 기호 5번과 6번을 받았다. 기독자유당은 ‘동성애 반대’, ‘할랄단지 조성 반대’, ‘반기독악법 저지’ 등을 구호로 내걸고 있는 보수 개신교계 정당이다. 민주당은 김민석 전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정통 야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결코 변경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당헌에 명기했다.

경기도 파주시의 한 인쇄업체에서 직원들이 21개 정당의 명칭이 빼곡하게 인쇄되어 있는 총선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원외정당들은 당명의 가나다순에 따라 기호를 배정받는다. 가자코리아당이 7번을 받았고 한나라당이 마지막 21번을 받았다. 정당 기호가 앞설수록 보다 주목도가 높아 득표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20개 정당이 비례대표를 낸 지난 19대 총선 득표 결과를 보면 기호와 득표율 간의 의미 있는 상관관계는 나오지 않았다. 의석배분을 받을 수 있는 정당득표율 3%에 미달한 16개 정당 중 가장 득표율이 높았던 당은 1.2%를 기록한 기호 10번의 기독당이었다. 가장 득표율이 낮았던 대한국당은 기호 12번으로 0.06%의 득표율을 올렸다.
정당 기호가 앞선 것이 득표율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 등록기간이 오래이고,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비율이 월등한 진보성향의 군소정당은 원내와 원외정당을 나눠 각각 다른 기준으로 기호를 배정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지난해 10월 선관위가 발표한 정당 활동개황 자료를 보면 당시 원내 3당이던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정의당 외에 가장 많은 당원을 확보한 정당 순위는 노동당, 국제녹색당, 녹색당 순이었다. 이 중 국제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와 지역구 후보를 전혀 내지 않아 선거에 불참했다. 노동당 관계자는 “당원 순위만이 아니라 당 설립이나 등록시점 등으로도 원내·원외정당을 아우를 수 있는 기호 배정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행 기호 배정 기준에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4번의 노동당과 15번의 녹색당은 각각 ‘전국민 기본소득 지급’과 ‘전면적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색다른 공약을 내놓으며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노동당은 재벌에 더 많은 세금을 물려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종래의 정책노선을 강조한다. 녹색당은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동물권을 강조하며 동물복지 공약을 포함하는 등 환경·생태정당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원내정당 대열에 오른 기독자유당 외에도 기독민주당과 그린불교연합당은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당이다. 기독민주당 역시 보수 개신교계 정당으로, 동성애·이슬람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한편 의석 수가 늘어나야 원내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는 군소정당답지 않게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그린불교연합당은 지역구 후보는 없이 비례대표 후보로 이대마 스님 1인만이 올라와 있는 정당으로, 한국을 세계 중립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이 눈길을 끄는 반면 종교 색채의 공약은 찾기 힘든 이색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반기문 총장 지지 정당도 4개나 등록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한다고 나선 정당도 4개에 달했다. 이름에서부터 ‘친반’이 들어간 정당은 비례대표 기호 18번 친반통일당과 비례대표 후보는 없이 지역구 후보만 각각 1곳에서 낸 친반통합과 친반평화통일당이 있다. 이들은 반 사무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것을 당의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 새누리당이 이름을 바꾸면서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을 가져간 한나라당도 반 사무총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현실성은 낮지만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워 주목을 끄는 정당도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내세운 기호 11번 공화당은 박 전 대통령을 명예총재 자리에 추대하는 한편 ‘성매매 합법화’, ‘종북 좌익인사 북한 이주’ 등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공화당은 유일한 비례대표 후보로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을 공천했다. 기호 9번의 개혁국민신당도 유일한 후보인 박세준 공동대표가 ‘발암물질을 먹이는 식품정책 개혁’을 내세우며 독소가 있는 병원 처방약 대신 천연 건강식품이 안전하다는 내용을 홍보하고 있다. 박근령 후보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박세준 후보는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각각 전과 5건을 저지른 적이 있다.
이밖에도 정당 비례대표 후보를 등록한 정당은 일제·위안부·인권정당, 고용복지연금선진화연대, 민중연합당, 복지국가당, 통일한국당, 한국국민당 등이 있다. 비례대표 후보 없이 지역구 후보만 등록한 정당은 대한민국당, 진리대한당 등이 있다. 56명의 지역구 후보자들이 등록한 민중연합당 외에는 모두 한 자릿수 후보자만이 등록했다.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에도 비례대표나 지역구 후보를 등록한 이유는 최근 4년 동안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시·도의회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 정당 등록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5개 이상의 시·도당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하는 등록요건이 있어 이와 같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국제녹색당, 새마을당 등은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선관위에 등록할 수 있는 정당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해 창당준비위원회 상태로 남아 있는 정당 수만도 16개에 달한다.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결성신고를 했지만 이번 총선에는 참여할 수 없는 정당들이다. 정당 등록 자체가 당원 및 자금 확보 등의 어려움 때문에 난항을 겪는 데 더해 군소정당은 의회 진출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 등록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하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복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현행 전국 명부식 비례대표제의 경우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출을 오히려 막을 수 있다”며 “긴 정당명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당내 갈등 표출과 보스정치의 강화라는 부정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