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당제 구도, 다양한 목소리 반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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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 소수정당과 시민사회운동 단체들, 지식인, 노동자, 청년, 농민 등 다양한 집단들이 머리를 맞대고 정치시스템을 민주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난생 처음으로 당적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도 국회의원 한 명도 없는 소수정당의 당적. 기성 정당이 당내 파벌 싸움과 밀실 공천 등으로 온갖 파열음과 추태를 보였던 지난겨울부터, 녹색당은 선거법상 허용되는 정당연설회를 하면서 열심히 당을 홍보하였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 서 있자니 손과 발은 꽁꽁 얼고 통증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추위 정도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막상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닥치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제약들이 소수 정당을 옭죄었다. 한마디로 기득권이 없는 정당은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3월 25일 녹색당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녹색당

3월 25일 녹색당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녹색당

지난 3월 말에 녹색당이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현행 선거법에는 소수정당에 불리한 독소조항이 가득하다. 세 가지만 간추려보자. 첫째, 비례대표의 경우 후보자 숫자와 관계없이 무조건 선거사무원을 전국에 걸쳐 총 34명(시·도별로 2명씩 할당)까지만 둘 수 있다. 지역구에서는 50여명에 이르는 선거사무원을 둘 수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어이가 없는 숫자다. 그리고 비례대표 후보는 마이크를 사용하는 유세나 연설을 할 수 없게 해놓았다. 사실 유세나 연설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구보다 비례대표에 더 많이 의존하는 소수정당들에는 특히나 불리한 조항이다.

둘째, 현재 정당 기호는 거대 정당이 1번과 2번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원내 정당들이 차지하게 되어 있다. 선거에는 ‘순서 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앞 번호가 유리하게 되어 있다. 원외 정당들은 아무리 오랫동안 선거 준비를 했어도 선거를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에서야 기호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에 비해 거대 정당들은 예비후보 때부터 명함에 기호를 넣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거대 정당에 유리한 제도다.

소수정당에 절대 불리한 현행 선거법
셋째, 현행 선거비용 보전제도는 고비용 구조이며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구조다. 거대 정당 후보들은 비싼 사무실에 유세차량, 화려한 공보물, 유급 선거운동원에 돈을 펑펑 쓰지만, 나중에 세금으로 보전 받는다. 총선 선거비용 보전액이 2004년 총선의 519억에서, 2008년 782억, 2012년 892억원으로 계속 증가해 왔다. 반면 소수정당 후보자들은 선거비용 보전을 위한 득표율(전액보전 15%, 절반보전 10%)을 넘기 어렵기 때문에, 보전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심지어 총 선거비용을 (기탁금을 제외하고) 500만원이라고 밝힌 후보도 있었다. 현행의 선거비용 보전제도는 기성정당에만 유리하고 결과적으로 돈을 헤프게 쓰는 금권선거를 조장하여 국민들만 골병이 들게 된다.

이런 선거법은 선거라는 시민들의 축제가 철저하게 기득권층들만의 잔치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선거는 이미 ‘블랙오션’(black ocean), 즉 기존 진입자들이 규제를 이용하여 진입장벽을 친 과점적 시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거대 기성 정당에게만 유리한 정치시스템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하승수는 <삶을 위한 정치혁명: 시스템의 노예에서 시스템의 주인으로>(한티재, 2016)에서 기득권에게만 유리한 정치시스템이 만들어진 이유를 1987년 민주화운동의 한계에서 찾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민주화의 해방공간에서 진보진영들은 ‘대통령직선제’ 하나에 몰두했을 뿐, 정치시스템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물론 대통령직선제가 중요했지만, 그것만 요구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결선투표제, 선호투표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한 다당제의 정착 등 정치시스템을 민주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제도 등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 오직 인물만 바뀌면 새로운 정치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그 결과 현재의 상대다수 소선거구제(1위 득표자만 당선되는 방식)와 무늬만 비례대표제인 병립형 비례대표제(지역구 따로 비례대표 따로 뽑는 방식)가 정착되었고, 양당제 시스템이 고착화되어서 사회가 점차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양당제에서는 선거 때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중도층의 표를 흡수하기 위해 보수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화되는 사회는 기후변화, 고령화, 인공지능과 로봇화 등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워진다. 미래에 대한 개방적 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과 새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배양되기가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양당제 고착으로 사회가 점차 보수화
무엇보다도 소수의 입장이 대변될 수 있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한, 양당제 구도 하에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기가 어렵다는 것이 결정적인 한계다.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득표수와 의석수를 일치시키는 것인데, 85%가 지역구이고 15%만 비례대표로 뽑으니 비례대표는 큰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 게다가 양당제 구도에서는 사표(死票)론이 선거철마다 등장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맞지 않아 포기하거나, 최악을 막기 위한 투표를 하게 된다. 그 결과 정치에 대한 좌절과 불신이 커지고, 거대 야당은 2등에 안주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되며, 정작 다양한 목소리의 반영이라는 정치의 핵심적 과제를 놓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그동안 일궈놓은 경제성장은 민주화와 함께 진전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양당제 구도 하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잃어버린(voiceless) 경제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길거리와 광장에서 군중의 함성은 계속 있었다. 하지만 그 외침은 아주 드물게만 실질적인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을 뿐 공허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정치는 점차 우리들의 삶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잔치로 변질되었다. 유권자 대신 보스의 눈치만 보는 정치, 지역 정서에는 의존하지만 지역의 대부분인 농촌과 농민의 문제는 방치하는 정치, 미세먼지·먹거리·교통 문제 등 대중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의제와 무관하게 추상적인 정책과 정쟁만 벌이는 정치, 유권자의 투표를 확보하는 것보다는 공천 받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해진 정치. 대다수의 목소리는 기득권층의 목소리에 눌려버리거나, 정작 자기 목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직 돈 버는 데만 열중하도록 길들어져 버린 것이다.

아직 4·13 총선 결과를 알 수 없는 시점이다. 양당제 구도가 더 고착화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변화와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와 무관하게 이제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 소수정당과 시민사회운동 단체들, 지식인, 노동자, 청년, 농민 등 다양한 집단들이 머리를 맞대고 정치시스템을 민주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위에 언급한 책에서도 제안했듯이 비례대표제의 참뜻을 살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득표수와 의석수의 일치)를 도입하여 다당제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다당제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제도들의 개혁(선거법, 정당법, 헌법의 개정까지 포함해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거대 정당들이 다당제를 추진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소수 정당들이 가급적 원내로 많이 진출하고 서로 연대하여 정치시스템의 개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서 목소리 없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번영하는 행복한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정말 살고 싶은 사회이며, 우리는 이런 사회를 누릴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상헌 한신대 교수·녹색전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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