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급 남탓’ 이라는 논평을 들은 IMF 환란 안내문. 강원도 정선 화암동굴 ‘국난 극복의 금’ 안내판으로 확인됐다.
“…그래서 국가의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공감대 속에서 국채보상운동 정신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금모으기 운동’이다.” 3월 중순, 논란을 빚은 IMF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의 해설을 담은 안내문 사진이다. 왜 논란이 되었을까. IMF 외환위기의 원인을 설명한 앞부분 때문이었다. “빈번한 노사분규의 발생, 노조 전임자 확대, 과도한 임금상승 등으로 기업의 비용부담을 증가시켰고, 국민들의 무분별한 해외여행으로 외화를 낭비하고 과소비, 충동구매, 모방소비 등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인 소비형태로 인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국민들의 무분별한 낭비 및 노조 때문에 IMF 외환위기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이 사진에 붙은 제목은 ‘역대급 남탓’이다.
초국적 투기자본의 ‘음모’설이라든지 고질적인 정경유착 문제, 정부의 환율정책 실패 등 다양한 진단이 나오지만 저 원인설은 기상천외하다. 어딘가 모르게 모 정당 대표의 “노조가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되었을 것”이라는 발언과 닮아 있다. 이미지 검색으로 해당 사진을 검색해보면 위 ‘역대급 남탓’이라는 누리꾼 논평 이외에도 ‘남탓 레전드’, ‘헬조선 세뇌 레전드’, ‘헬조선에 사는 법/금모으기 운동이란?’, ‘IMF는 미개한 국민 탓이다’, ‘잘되면 재벌 탓, 안 되면 국민 탓’,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IMF의 원인’ 등의 말과 함께 퍼져 있다. 도대체 저런 IMF 환란 설명은 어디에 붙어 있었던 걸까. 확인 결과, 강원도 정선의 화암동굴 내 ‘국난 극복의 금’이라는 코너에 있던 안내문이다.
“아… 그때는 제가 이 부서에 있지 않아 정확히 모르는데 누가 문제제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은 지난해 8월에 수정했어요.” 화암동굴 관리사무소 관계자의 말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지난 2007년에 강원도 정선에 소재한 한 광고기획사가 수의계약으로 1149만원을 받고 해당 안내판(‘국난 극복의 금’) 등의 설치공사를 한 것으로 나오는데. “글쎄요. 거기에 적혀 있던 내용까지 기획사에 일임한 것은 아니고, 이쪽에서 그 글은 줬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네요.” 3월 17일, 이 관계자는 교체된 안내문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다. 현재 ‘금모으기 운동’의 설명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 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당시 대한민국의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인 희생정신으로 자신이 소유하던 금을 나라에 내어놓은 운동이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부채가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다. 전국 누계 약 350만명이 참여한 이 운동은 대한민국 국민이 환란 극복을 위해 혼연일체가 돼 애국심을 발휘하여 예상보다 훨씬 빨리 IMF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찬찬히 읽어보면 이번에는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없다. 밑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한 경제지의 “환란 극복 ‘눈물의 금모으기’… 한국은 울고 세계는 감동했다”는 2013년 5월 3일자 기사에서 ‘발췌’했다고 적혀 있다. 질타가 쏟아지니,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