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구국선언과 교육민주화선언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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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민주구국선언 40돌이고, 교육민주화선언 30돌이 되는 해이다. 나라를 구하고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 나섰던 선배들의 뜻과 행동을 오늘 우리가 되돌아보며, 오늘의 현실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해 나가겠다는 다짐과 실천을 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지난 3월 1일 삼일절 97돌 날 명동성당에서는 3·1민주구국선언 40돌을 기념하는 기도회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공동주관으로 미사 형식으로 열리고 있었다. ‘더 높은 민주주의, 더 넓은 민주주의, 더 깊은 민주주의를 선언한다!’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선언문은 40년 전 그날처럼 준엄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국정원, 국방부 등 국가기관이 불법을 저질러가며 탄생시킨 박근혜 정부는 떳떳지 못한 그 탄생이력으로 국민을 실망시키더니,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정보기관 도감청,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참담한 실정으로, ‘이것이 과연 국가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역사정의,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지당한 외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이를 종북행위로 매도하고 민심을 교란함으로써 국론분열을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난데없는 국가비상사태를 들먹이며 의회를 무시한 채 안보를 구실로 삼아 또 하나의 폭압적 통치수단에 지나지 않는 ‘테러방지법’을 강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차 이 법이 국가안전의 이름으로 시민의 양심과 자유를 구속하고 폭압에 순응하게 만들 독재자의 애용품이 되리라는 사실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보여주었듯이, 자고로 민주주의를 박멸시키는 공포정치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독재자 자신의 종말마저 참혹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바입니다.”

1976년의 3·1민주구국선언 사건 관련자들의 부인들이 그해 5월 4일 가슴에 남편들의 수인번호를 단 채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모여 구속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가운데 안경 쓴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6년의 3·1민주구국선언 사건 관련자들의 부인들이 그해 5월 4일 가슴에 남편들의 수인번호를 단 채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모여 구속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가운데 안경 쓴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40년 전보다 더 비장하고 준엄한 성명
사실 40년 전 발표된 ‘3·1민주구국선언’의 내용은 ‘구국’이란 말이 들어갈 정도로 엄숙하고 비장했지만 내용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1.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2.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 되어야 한다, 3.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지상의 과업이다”라는 3개 항으로 이루어졌는데, 전문에서 표현된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 민족은 또다시 독재정권의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삼권분립은 허울만 남고 말았다. 국가안보라는 구실 아래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날로 위축되어 가고, 언론의 자유와 학원의 자주성은 압살당하고 말았다”는 내용이 다소 비판적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지극히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요구이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을 법률도 아닌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몰아 김대중 등 11명을 구속 기소하고 윤보선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자행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사건이 재심을 거쳐 2013년 대법원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정일형, 이태형, 이우정, 문익환, 서남동, 이문영, 안병무, 윤반웅, 김승훈 등 12명은 유명을 달리하여 생전에 억지죄인의 억울함도 풀지 못한 형편이 되어버렸다.

3·1민주구국선언이 있고 10년이 지난 1986년은 또 새로운 쿠데타로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전두환이 아래로부터 끓어오르는 민주화의 열망에 대한 민중의 염원을 외면한 채, 대통령 체육관 선출의 호헌조치를 발표함으로써 나라가 혼란 속에 빠졌다. 교수는 학교별로, 종교인·예술인 등 지식인들은 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전두환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적으로 헌법을 고칠 것을 촉구하는 민주화선언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러한 때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나선 것이 이른바 5·10교육민주화선언이었다. 당시 YMCA 교사회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600명 이상의 교사들이 서명하고, 서울 YMCA 강당 등에서 집회를 열면서 발표한 이 교육민주화선언은 민주화운동이 대중화하는 시발이 되어 각 분야의 대중적 요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교육민주화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학생과 함께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 교사들은 오늘의 참담한 교육현실을 지켜보며 가슴 뜯었다. 영원한 민족사 앞에 그 책임의 일단을 회피할 수 없음을 통감하게 된 우리는 더 이상 강요된 침묵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우리 교사들을 믿고 따르는 학생들의 올곧은 시선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방관자로 남아있는 우리를 더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맹랑한 꼭두각시의 허무한 몸짓을 그만 그쳐야 한다.”

그리고 그때 교사들이 요구했던 최소한의 조건은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실질적 보장, 교사의 시민적 권리 및 학생·학부모의 교육권 확립, 교육행정의 비민주성, 관료성 배제와 교육의 자율성 확립, 자주적 교원단체의 설립 및 활동 보장, 비교육적 잡무 제거 및 강제 보충수업 및 심야학습 철폐 등이었고, 스스로 학부모들의 돈봉투나 참고서 등 업체의 커미션 등을 안 받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지극히 상식적 행동에도, 주도하거나 참가한 교사들은 해임 등 중징계는 말할 것도 없고, 부당전보 등의 보복성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 교육민주화선언이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의 질적 변화를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물론, 전국교직원노조 건설의 결정적 계기와 든든한 밑받침이 되었다.

1989년 5월 28일 연세대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결성식.

1989년 5월 28일 연세대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결성식.

보수정권의 전교조에 대한 온갖 탄압
1989년 5월 28일 건설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선언문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보라! 민족사의 대의에 서서 진리와 양심에 따라 강철같이 단결한 40만 교직원의 대열은 저 간악한 무리들의 기도를 무위로 돌려놓을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동지여! 함께 떨쳐 일어선 동지여! 우리의 자랑스런 제자의 해맑은 웃음을 위해 굳게 뭉쳐 싸워 나가자!! 교육민주화, 사회민주화, 그리고 통일의 그날까지 동지여, 전교조의 깃발 아래 함께 손잡고 나아가자!”

이렇게 출범한 전교조는 그 설립취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활동해 왔다. 한때는 10만 조합원의 힘으로 학교의 여러 부정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비민주·비효율·비상식을 몰아내고 교사·학생·학부모가 실질적 중심이 되는 정상적인 학교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들어서며 반노동·비노조 정책을 쓰면서 전교조도 온갖 탄압 속에서 제 힘을 잃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며 그 강도는 더 심해져 이제는 노동조합 자체의 존폐가 위기에 처해 있다. 공무원노조의 설립 불허나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는 사용자가 정부라는 점에서 보면 분명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위법행위이다. 법원의 판결에 따른다는 핑계를 대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이나 민사라 하더라도 최종판결에 따라 회복하기 힘든 조치를 미리 가하는 것은 상식적 법 논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부가 전교조에 취하고 있는 조치는 헌법정신에 따르더라도 문제가 많다. 9명의 해고자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6만 전교조를 법 밖으로 몰아내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이기도 하지만, 노조 전임 파견자의 무조건 복귀나 제공했던 사무실 등 기자재의 반환, 단체협약 해지와 그동안 참여했던 여러 위원회에서의 철수 등은 너무 가혹한 조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는 임금과 근무조건을 주로 따지는 일반적 노조를 넘어 정부와 교육 파트너로서 참교육을 통해 우리 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것이다.

올해는 3·1민주구국선언 40돌이고, 교육민주화선언 30돌 되는 해이다. 나라를 구하고 교육을 되살리기 위해 나섰던 선배들의 뜻과 행동을 오늘 우리가 되돌아보며, 오늘의 현실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해 나가겠다는 다짐과 실천을 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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