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기의 안전장치는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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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정의 관계를 떠나 최종 목적인 대한민국기의 안전운항을 위해 항공기가 경로를 이탈하거나, 고도에 이상이 있을 경우 기장인 대통령에게 조언하고 경고할 책임이 있다.

1997년 8월 6일, 괌의 아가나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KE 801편이 추락했다.

승객 237명과 승무원 17명을 합쳐 254명 중 229명이 숨졌고, 25명이 다친 대형 사고였다. 새삼 오래전의 비극적인 사건을 끄집어낸 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항공기의 상황이 급박한 위기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항공 사고기의 조종실에는 기장을 비롯하여 부기장과 항공기관사가 타고 있었다. 초기 민간 항공기에는 기장이 혼자서 조종을 책임졌지만, 항공기의 규모가 커지고 첨단장비와 기술들이 적용되면서 캡틴(Captain)이라 불리는 기장이 혼자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를 지원하고 유사시 기장을 대신하기 위해 퍼스트 오피서(First Officer)라 불리는 부기장과 항공기의 기계장치나 전자계통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기장의 지시에 따라 엔진의 출력을 조정하는 항공기관사(Flight Engineer)가 동승하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왜 침묵했나
세 명의 역할이 따로 있긴 하지만, 항공기 운항을 책임지는 기장 외에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를 동승시킨 데에는 무엇보다 안전 운항을 위한 ‘상호 점검(Cross-Check)’에 그 목적이 있다.

1997년 불행한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의 사고기에도 3명의 승무원이 조종실 안에 동승하고 있었다. 사고가 나기 12초 전 대지접근경보장치(GPWS)의 경고음을 들은 부기장은 기장에게 고도를 높이라고 조언했지만, 기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를 무시했다. 기장의 말에 동승했던 부기장은 더 이상 이견을 달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항공기관사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춰나가던 비행기가 착륙지인 공항이 아니라 니미츠 힐이라는 언덕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기장이 급히 고도를 높이라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승무원들만 믿고 편안히 좌석에 앉아 있던 237명의 탑승객들은 2초 후 활주로가 아니라 니미츠 힐의 언덕에 부딪치며 비행기와 함께 추락하고 말았다.

이 비극적인 사고는 막을 수 없었을까. 당일 강풍이 불고, 공항의 활공 지시장치가 수리 중이라고 했지만 이런 경우를 대비해 항공기의 조종실에는 기장 외에도 제1, 제2의 승무원이 동승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 두 명의 조언자들은 이런 사고를 방치했을까.

사고의 원인은 기장이 부기장의 조언을 무시한 데에도 있지만, 부기장이나 항공기관사가 기장의 이런 태도에 더 이상 입도 벙긋하기 않은 채 침묵했다는 사실에 있다.

당시 대한항공 KE 801편의 추락사고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원인 가운데는 독특한 한국의 문화적 관습이 있다고 했다. 민간 항공의 도입기에 한국의 승무원들은 군 조종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군인 출신 조종사들의 엄격한 계급과 위계의식은 민간 항공으로 전직한 뒤에도 여전히 이어졌다고 한다. 이런 경직된 위계 상황에서 기장의 의견에 부기장이나 항공기관사가 이의를 거듭하여 제기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사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안전 운항을 책임질 5년짜리 대통령이라는 기장을 두고 있다.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기장에게 주고 있지만, 수천만의 탑승객과 막대한 화물을 적재한 대한민국기의 안전 운항을 위해서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기장도 사람인지라 실수나 판단착오가 없을 리 없다는 점에서 이를 지원하고 견제할 ‘상호 체크’의 안전장치들을 두고 있다. 기장이라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여와 야라는 양당제를 채택하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상호 견제하는 삼권 분립이라는 장치가 있으며, 당과 정의 관계와 역할을 엄연히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정의 관계를 떠나 최종 목적인 대한민국기의 안전운항을 위해 항공기가 경로를 이탈하거나, 고도에 이상이 있을 경우 기장인 대통령에게 조언하고 경고할 책임이 있다.

대통령 말에 따르는 것만이 단합일까
과연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대한민국기는 이런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가. 이제 자신에게 바른 소리를 하거나, 지적하는 의원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으며 내치는 기장이 운항할 비행기의 안전은 어떠할 것인가.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는 국회를 ‘국민이 심판하라’며 몰아세우는 기장이 운항하는 비행기의 착륙지는 과연 어디일까.

강풍이 불고 활강 지시장치가 망가진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부기장의 경고를 무시한 기장이 조종하던 대한항공 801편은 목적지인 아가나 국제공항에 착륙하지 못한 채 공항에서 남쪽으로 4.8㎞ 떨어진 니미츠힐 중턱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제 대통령의 말대로, 여러모로 급박한 국가 위기의 상황에 처한 대한민국기는 어떻게 안전한 운항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의견만 따르라고 조언을 무시하고, 이견을 배신으로 몰아가는 기장의 태도가 옳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의 단합’이 중요할 때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것이 자신의 뜻에 군말 없이 따르며 침묵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현명한 기장이라면 위기에 처할 때일수록 안전장치의 경고음과 주변의 지적과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게 국민이고, 그것이 단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과연 고도를 오판하여 언덕을 향해 추락하는 비행기의 기장의 말에 경고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따르는 것이 단합일까. 운항은 기장이 알아서 하는 것이니 무조건 그의 말에 따르는 것이 참된 애국일까.

기장의 잘못된 판단도 위험하지만, 고도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내 입을 다문 부기장과 항공기관사의 침묵이야말로 위기의 종결판이라 하겠다. 그런 침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위계와 복종만을 강조하며 조언과 지적에 격노하는 기장이야말로 그런 위기를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런 기장이 조종하는 항공기라면 3명이 아니라 수십명의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채운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안전 운항보다는 기장의 눈에 들기 위해 앞 다투어 ‘진실한 사람’임을 경쟁하는 풍조야 말로 위기의 화근일 것이다.

‘단합’을 좋아하지 말자. 다양한 목소리와 바른 조언이야말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에 따르는 것만이 단합이라고 생각한다면, 5년짜리 기장의 요구 치고는 지나치게 무모하고 오만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시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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