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인터넷사이트에 ‘허언증갤러리’라는 이름의 게시판이 신설됐다. 이름 그대로 허언증과 관련된 글들을 올리고 소통을 하는 공간인데, 사실상 누가 누가 더 ‘뻥’을 잘 치는지 겨루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동물이라거나, 더 기상천외하게는 네트워크 상의 데이터가 돼버렸다며 이용자들을 웃기려는 글들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연애와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N포세대’에 걸맞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조차 실현 불가능한 허언증의 발로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물론 여기서도 ‘헬조선’에 대한 풍자는 빼놓을 수 없다. 바다가 앞으로 인간의 생활구역이 될 것이라며 자못 진지한 어투로 글을 쓰던 한 이용자는 “물론 (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압력이 심해지기는 합니다만 헬조선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모두 압력에 특화되어 있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심해가 어둡다고는 하나 이 나라 미래만큼 어둡지도 않습니다”라며 한국의 현실에 돌직구를 날린다. 그래도 글의 결말은 “제가 최근에 해저지역에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있는데, 곧 있으면 분양 들어갑니다”라는 말로 허언증이라는 요소를 빼먹지 않았다.

한 이용자가 허언증갤러리에 올린 글 / 디시인사이드 화면 캠처
해당 사이트 이용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어투가 반말투인 것과 달리 유독 이 ‘허언증갤러리’에서는 이용자들이 경어체로 글을 쓴다.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려면 무의식 중에 정중한 체를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역사상의 무수한 거짓말들은 권력자나 관리, 무리의 수장 등 엄숙하고 체면을 차리는 위치에서 나왔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약을 발표할 때는 그 누구보다 진실한 모습으로 보육부담을 덜어주겠노라던 후보가 당선된 뒤에는 책임을 지방자치단체로 떠넘기는 등의 행보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곳곳의 격전 선거구를 취재하면서 지역 유권자의 말만큼이나 각 예비후보들과 수행진들이 공약과 정책에 관해 밝히는 말들도 많이 듣게 된다. 그 지역의 유권자들은 비슷한 말을 이미 4년 전, 또는 그 이전부터 여러 차례 들어왔을 것이다. 아직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유권자들은 이들의 공약이 또 한 번 허언으로 그칠지 아닐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뽑고 나서 이번에도 허언이었네, 하며 허허 허탈하게 웃은들 ‘허언증갤러리’처럼 웃고 넘길 수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