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만리장성 통과 마술. 어떤 트릭이 사용된 것일까. / 유튜브 캡처
“제가 들은 짧은 중국어로는 PD 등 스태프에게 비밀유지 각서를 쓰게 하고, 사다리 타고 넘어갔다고 하네요. 이어진 화면이 아니라 한 5분 정도 편집된 영상이었고요.” 1월 28일, ‘배부른 기마민족’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이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글의 제목은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만리장성 통과 비밀’이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쇼’는 설이나 추석 같은 연휴 때 성룡 영화와 함께 단골로 방영되던 프로그램이다. 위 누리꾼 주장에 따르면 비밀유지 각서 기간이 끝나 같이했던 스태프들이 중국의 CCTV, 국영방송에 나와 좌담을 했는데, 생방송처럼 보였던 영상이 알고 보니 편집된 것이었고, 실제 만리장성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타고 넘어갔다고 폭로(?)했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1986년에 제작된 이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 등에 남아 있다. 마술 중에서도 이런 종류의 마술, 사람이나 물건을 사라지게 하거나 토막냈다가 다시 원상 복구하는 마술을 일루전(illusion)이라고 한다. 카퍼필드는 특히 ‘그랜드 일루전’, 즉 통 크게 아예 하나의 건물을 사라지게 한다든가 하는 장르의 개척자였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 증발 마술(1983) 등이 유명하다. 물론 마술이다. 실제 그가 수십m 두께의 돌덩어리로 이뤄진 성벽을 통과했으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어떻게?
‘자유의 여신상’의 경우 실제 여신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느린 속도로 무대를 회전시켰다는 것이 정설이다. 만리장성 마술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트릭’ 역시 실제 흰 장막이 쳐졌을 때 이동식 계단에 그가 숨어 반대편으로 이동했고, 그림자 마임 연기는 그와 비슷한 분장을 한 또 다른 조수가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마술업계에서는 어떻게 볼까.
“그냥 추정일 뿐입니다. 카퍼필드 스스로 공개한 적도 없고, 관계자들 역시 방법을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김원일 마술연구소의 김원일 대표의 말이다. 그는 영상 조작 트릭, 그러니까 별도로 찍은 영상을 잘라 붙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그런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만리장성 마술을 기획한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쇼에서 조수로 나온 사람도 실은 프로 중의 프로 마술사입니다. 친분도 없는 엑스트라가 비법을 알 방법은 없어요.”
어린 시절 TV에서 봤던 카퍼필드의 근황도 문득 궁금해진다. 1980년대부터 TV에 단골로 나오던 사람이니, 이젠 할아버지 나이가 됐겠다 싶어 프로필을 조회해 보니, 웬걸 1956년생. 이제 60살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지금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술쇼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달 전인가 보러 갔는데 만석이었어요. 여전히 당대의 최고 마술사로 유명합니다.” 명절이면 식상해 하면서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TV에서 그의 마술 쇼를 봤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유독 생각나는 건 스마트폰을 꿰차고 각자 방에 틀어박혀 따로 노는 요새 명절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