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이 돋보이는 무협영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터치스크린]미장센이 돋보이는 무협영화

제목 자객 섭은낭(The Assassin)

감독 허우샤오시엔

출연 서기,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

수상 68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황금종려상 노미네이트

상영시간 105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6년 2월 4일

우연히도 전날 밤 손에 잡힌 책이 동아시아 고대사에 대한 책이었다. 일본은 신라를 번국이라고 불렀다. 이중의 의미다. 당의 변방국가일 때도 있고,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라는 뜻으로도 번국이라고 불렀다. 둘 다 실제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 측이 일부러 내리깎는 이야기였다. <자객 섭은낭>은 당의 번국 중 하나였던 위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말미에서 섭은낭은 또 다른 번국 ‘신라’로 떠나면서 마무리된다.

시사회 이후 마련된 감독 허우샤오시엔과 대화시간에 혹시 그 ‘뒷이야기’도 영화화 계획이 있는지 누가 물어봤을까 싶었는데, 홍보사가 보내온 감독과의 대화 내용 중에 그런 질문과 답변은 없다.

영화는 불친절하다. 시작 장면에서 두서너 줄의 자막으로 영화의 배경을 보여줄 뿐, 복잡한 등장인물의 관계는 모두 연기와 대사로 녹였다. 아마 한 번 보고 영화의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독자에 대한 ‘예의’ 때문에 영화를 구해 두 번 봤다).

허우샤오시엔 하면, 떠오르는 건 미장센의 감독이다. <동동의 여름방학>(1984), <동년왕사>(1985), <비정성시>(1989) 등 그의 작품은 시네마테크의 필견 작품 목록에 항상 거론된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가 포착하는 중국의 자연풍광은 영화의 또 다른 배역 캐스팅이다 싶을 정도다.

굳이 장르를 분류한다면 무협(martial arts)영화이겠지만, 종전의 장르영화와는 전혀 다른 연출이다. 무협영화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합(合) 맞추기다. 일종의 춤처럼 정교하게 등장인물들이 손발을 맞추는 연기다. 영화에 몇 차례 등장하는 격투 신에서 그 느낌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전의 장르로서 무협영화를 생각하고 극장에 간 관객이 있다면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황금가면을 쓴 자객 정정아는 느닷없이 산속을 산책하는 장면이 편집되었다가 한참 뒤에 ‘갑자기’ 섭은낭의 호적수로 나타난다. 합을 겨룬 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각자의 길을 떠난다. 보통 B급 무협의 일반적인 코드는 자신의 내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악당’이 뒤늦게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 표정을 지으며 피를 내뿜고 쓰러지는 것을 보여주는 등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하지만 섭은낭과의 격투 뒤 정정아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영화에는 없다. 눈썰미가 좋은 관객이라면 정정아가 쓴 황금가면에 줄이 가 있으며, 나중에 잠깐 편집된 숲속에 버려진 두 쪽 난 황금가면에서 그의 ‘운명’을 읽을 수 있겠지만. 역시 미장센의 감독답다.

연출은 보다 관조적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면의 연출이다. 감독은 배우들에게 연기를 맡기고, 배우들에게 최대한 스테프진의 촬영 모습을 들키지 않고 찍는 연출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의 시선처리에서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영화는 배우 서기가 맡은 섭은낭의 내면 묘사에 치중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카메라 사이에는 때때로 방해물(겹겹이 드리워진 반투명한 천들, 황금촛대 따위)이 존재하는데, 재미있는 연출방식이다. 그 방해물들 사이로 자객 섭은낭이 흡사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나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는 얼마나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사에 또 다른 족적을 남긴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 리스트 중 또 한 편이 이렇게 추가되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터치스크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