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 문명의 뿌리
웬델 베리 지음·이승렬 옮김·한티재·1만9000원
착취자의 마음, 양육자의 마음. 지은이는 사람의 마음을 두 갈래로 나눈다. 착취자의 기준은 효율성이고, 목표는 돈이다. 반면 양육자의 기준은 돌봄이고, 목표는 건강이다. 착취자가 이윤을 쫓는다면, 양육자는 땅의 건강과 자신의 건강을 추구한다. 착취자는 한 뙈기의 땅에서 얼마나 많은 소출을 빨리 얻어낼 수 있느냐를 따진다.
양육자의 질문은 좀 더 복잡하다. 한 뙈기의 땅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은 어느 정도일까를 묻는다. 즉 땅을 훼손시키지 않는 가운데 땅에서 얼마만큼을 얻을 수 있을지를 헤아린다. 착취자의 소망은 가능한 한 일을 적게 하고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양육자의 소망은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동시에 가능한 한 좋은 노동을 하고 싶어한다.
지은이 웬델 베리는 미국 보수사상의 은사로 불린다. 여기서 보수는 정치적 보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상적·문화적 보수를 의미한다. 그가 보수적으로 보존하고 싶은 것은 ‘농적 가치’다. 야생성의 복원, 농촌 공동체의 강화, 땅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양육자의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언제나 양육자의 마음보다 착취자의 마음이 앞섰다. 지은이는 자급, 돌봄의 가치를 지닌 오래된 공동체인 ‘소농’에서 문명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기업화된 영농과 끊임없는 개발 속에서 이런 전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는 미국의 역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오랫동안 안정되게 정착해 사는 삶은 미국 역사에서 드물었지만, 수천명의 이민자와 해방된 노예들의 꿈은 모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땅을 나눠 공동체에 정주하는 것이었다.
지은이는 정부의 거창한 약속이나 계획이 아니라 소농의 삶의 방식에서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토머스) 제퍼슨이 민주적 자유의 가장 확실한 안전망이라고 생각했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민의 존재’는 오래된 생각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