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고환’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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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순,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서 하나의 사진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점 세 개만 있어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얼굴로 인식하니까요.”, “뚜렷한 콧대에 콧구멍… 눈의 흰자 검은자까지 구별되고, 심지어 입가엔 입술의 명암까지 있으니.” 사진은 몸속을 찍은 초음파 사진이다. 그런데 뭔가 놀라는 얼굴인 것같기도 하다. 이 사진에 붙은 제목은 ‘고환암의 얼굴’이다.

‘고환암의 얼굴’로 화제를 모은 초음파 사진. 2011년 9월에 캐나다에서 찍힌 실제 사진이다. / 내셔널포스트

‘고환암의 얼굴’로 화제를 모은 초음파 사진. 2011년 9월에 캐나다에서 찍힌 실제 사진이다. / 내셔널포스트

합성일까. 아니다.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검색해 보면 2011년 11월쯤 이 사진과 관련한 논란을 다룬 보도들이 나온다. 심지어 이 사진은 그해 9월에 발행된 ‘비뇨기학(Urology)’ 학회지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영국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학회지에는 “의사들 사이에서 사진이 어떤 신성(神聖)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간략한 토론이 있었지만 우연의 일치 때문으로 금방 결론이 내려졌다”는 설명이 같이 실려 있었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 즉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얼굴과 유사한 패턴에 대해 본능적으로 캐치하는 심리적 기제를 발달시켜 왔고,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상당수는 이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코너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했다(예를 들면 911호 언더넷 기사 ‘감자 싹에 나타난 예수님’).

그러나 위에 인용한 보도만으로는 이 남자의 고환에 생긴 일이 정확히 어떤 일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테라토마(Teratoma)라는 종양이 있다. 이 종양은 특이하게도 DNA지도를 가지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혀 엉뚱한 부위에 신체조직을 생성한다. 종양에 심장이 나타난다든지 하는 등의 희귀사례가 없지 않다. 그러니까, 위의 고환암 얼굴은 일종의 ‘테라토마’로 실제 눈과 코, 입 조직을 갖춘 종양이었을까.

“그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그게 ‘토스트빵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처럼 보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어요.”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며칠 뒤, 캐나다 매체 <내셔널포스트>는 당시 사진을 학회에 보고한 레지던트 의사를 인터뷰했다. 보도에 따르면 초음파 사진을 찍은 45세의 하반신 마비 남자는 2년 전부터 그 ‘부위’의 고통에 시달렸다. 고환의 초음파 사진은 약 40장 가까이 찍었는데, 그 중에 ‘우연히’ 마치 에드워드 뭉크의 ‘절규’ 그림 속 남자 얼굴처럼 보이는 사진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 계속되는 그의 말이다. “특정한 부분에 드리워진 음영으로 얼굴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결론은 ‘테라토마’도 아니었다는 말씀.

이 의사에 따르면 수술은 간단히 끝났다. 조직검사 결과 암이 아닌 단순 종양으로 밝혀졌다. 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얼굴사진에 대해 한 번 말한 적이 있긴 한데, 초음파 사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데요.” 어차피 앞으로도 ‘고환암 얼굴’ 초음파 사진은 인터넷을 떠돌겠지만 한 가지 정정할 것은 있다. 암 종양은 아니고 그냥 일반 종양이었다고 한다. 참고하시길.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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