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사업으로 긴 방조제가 바닷물을 차단한 뒤, 수십 년째 방치되어 온 경기도 화옹호 주변의 초원에 희귀조류 초원수리가 찾아왔다. 초원수리는 주로 중앙아시아·인도·러시아·몽골 서부와 같은 초원지대에서만 서식하는 맹금류다. 넓은 초원이 없는 우리나라 같은 지형에서 초원수리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화옹호 주변의 초원에 초원수리 한 마리가 찾아와 머물렀다.

초원수리가 먹잇감을 찾기 위해 화옹호 주변 초원을 굽어보며 비행을 하고 있다.
이곳은 썰물과 밀물이 드나들던 광활한 갯벌이었지만 물길을 차단하면서 많은 생명체가 사라졌다.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매년 풀씨들이 바람에 실려 퍼져갔다. 키다리 갈대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염분을 양분으로 서식하는 칠면초 등이 초원을 이루었다.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바뀌면서 이곳에서 초원수리도 월동을 하고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초원수리가 자기보다 몸집이 큰 흰꼬리수리를 공격하자 흰꼬리수리가 달아나고 있다.
홀로 찾아온 초원수리는 간척지 주변의 풀숲이나 흙더미 위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에 못지 않게 기다리지 않고는 비행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초원수리는 사냥을 하긴 하지만 대체로 동물의 사체를 찾아먹는 습성이 있다. 나선형으로 비행을 하며 드넓은 초원의 곳곳을 굽어보며 먹이를 찾아 나선다.

초원수리의 휴양지인 화옹호 초원에 아침 해가 뜨고 있다.
때로는 흰꼬리수리가 사냥한 것을 빼앗아 먹기도 한다. 흰꼬리수리가 비행을 하게 되면 초원수리도 주변을 비행하며 흰꼬리수리의 행동을 관찰한다. 초원수리가 찾아온 이곳 화옹호 주변 초원에는 배수로와 도로 등 기반공사가 한창이다. 앞으로 초원수리가 다시 찾아올지 의문이다.
<이재흥 생태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