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줍지 마세요, 청설모에게 양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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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에 들어서니 숲속의 나무들이 잎사귀를 모두 내려놓아 산이 헐렁하다. 헐렁한 만큼 숲속은 밝아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동물들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좋다. 밤나무,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와 같은 큰 잎사귀가 쌓여 발자국 소리가 동해안의 파도소리처럼 일어난다. 낙엽이 많이 쌓여 폭신폭신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아프지가 않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반질반질한 눈망울을 굴리며 청설모가 나무 위에 앉아 능청스럽게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아마도 쌓인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렸나 보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눈싸움하던 녀석이 내 행동에 관심이 없다는 듯 나무타기 달인답게 몸을 날려 옆 나뭇가지로 간다. 그리고 척추를 길게 펼치며 천천히 나무를 타고 땅으로 내려온다.

낙엽 속에서 알밤을 찾은 청설모가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에 앉아 알밤을 맛있게 먹고 있다.

낙엽 속에서 알밤을 찾은 청설모가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에 앉아 알밤을 맛있게 먹고 있다.

녀석은 내가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을 알아챘을 법한데도 달아나지 않고, 쫄랑쫄랑 무언가를 찾는다. 누구보다 빠르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쌓인 나뭇잎을 뒤지던 녀석이 붉은 알밤 한 톨을 찾아 입에 물고는 고개를 돌려 경계의 대상으로 지목된 나를 바라본다. 주변을 살핀 후 잽싸게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가 나뭇가지에 앉아서도 나를 내려다 보며, 두 앞발로 밤톨을 쥐고 껍질을 벗겨내며 맛있게 먹는다.

낙엽 속에서 밤 한 톨을 주운 청설모가 입에 물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낙엽 속에서 밤 한 톨을 주운 청설모가 입에 물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청설모들은 다람쥐와 달리 겨울잠을 자지 않아 사계절 내내 산에서 볼 수 있다. 등산로나 도심 공원 등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을 배회하며, 사람들이 버린 과일껍질과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거나 던져주는 것을 받아먹는 데 길들여진 녀석들도 있다.

땅에서 쫄랑쫄랑 뛰어다니던 청설모가 나무를 타고 오르고 있다.

땅에서 쫄랑쫄랑 뛰어다니던 청설모가 나무를 타고 오르고 있다.

번식기가 되면 까치가 버린 폐허가 된 둥지를 이용하거나 소나무 같은 침엽수에 직접 둥지를 엉성하게 틀고 번식을 한다. 워낙 활동이 활발한 녀석이라 은밀하게 한정된 곳에서만 활동하는 동물들에 비해 참매와 같은 맹금류에 가장 많이 잡아먹히는 대상이기도 하다.

도토리나 알밤뿐아니라 붉게 익은 열매도 청설모에게는 맛있는 먹을거리다.

도토리나 알밤뿐아니라 붉게 익은 열매도 청설모에게는 맛있는 먹을거리다.

청설모의 원래 이름은 한자로 풀이하면 청서모(靑鼠毛), 청서라 한다. 탐스러운 청서의 꼬리털이 붓의 재료로 쓰이면서 청설모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재흥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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