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돈이 뒷받침돼야 관계도 돈독해진다?](https://img.khan.co.kr/newsmaker/832/80_a.jpg)
친밀성의 거래
비비아나 젤라이저 지음 |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 옮김 | 에코리브르 | 2만1000원
부모가 어린 자녀를 돌보고 용돈·학비를 주는 것,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 형제·자매 간에 서로 도와주는 것…. 비단 가정 내에서 뿐 아니라 애인·친구 사이에서도 대부분 사람은 금전 문제가 포함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흔히 ‘친밀한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부각되거나 ‘경제적 거래’를 들먹이는 언행은 불미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부모자식 간, 친구 간에 돈 문제를 먼저 염두에 둔다면 친밀한 관계는 끊기거나 적어도 훼손되는, 어림없는 일이다.
프린스턴대 사회학과 비비아나 젤라이저 교수는 <친밀성의 거래>(The Purchase of Intimacy)에서 이런 생각들을 뒤집어놓았다. 젤라이저 교수는 친밀함과 경제적 행위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친밀한 관계 내에서 생산, 소비, 분배, 거래, 자산 이전과 같은 행위가 상존·교차한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런 행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저자는 친밀한 관계와, 그것에 상존·교차하는 경제적 행위는 서로 촉진한다고 단언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친밀함과 경제적 행위가 연관된 법적 분쟁을 꼼꼼히 분석한 것을 토대로 인간은 경제적 행위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며 재협상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 같은 행위를 저자는 노골적으로 ‘친밀함의 구매’라고 표현했다. 이를테면 돈으로 친밀함을 사고,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줄곧 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이 적확한 분석임에도 친밀한 관계 내에서는 그것을 애써 부인한 채 의무, 책임, 도리 등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친밀한 관계(인간)보다 경제적 행위(돈)를 우선시하는 것이냐며 발끈해 저자를 꾸짖을 만한 대목이다.
젤라이저 교수를 마냥 탓할 수만도 없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정 내에서나 애인·친구 사이에서 의무, 책임, 도리라고 일컫는 것들이 결여된다고 가정해보자.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가 자녀에게 용돈·학비 등을 대주지 않는다면,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은 형제·자매를 외면한다면, 애인·친구 사이에 금전 문제에 관한 한 철저히 담을 쌓는다면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금전 문제가 없어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게 아니라 애초에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이론은 경제사회학의 한 분야일 뿐이다. 더욱이 저자는 경제사회학 분야에서 (자신의 이론이) 소수(파)에 속한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친밀한 관계와 경제적 행위를 별개의 영역으로 보고 있는 이론이 주류인 것이다. 하지만 뒤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두려움을 준다. 젤라이저 교수의 주장이 삭막해 보이는 까닭은 사람 사이의 정(情)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현상만 보고 속내를 간과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처럼 친밀한 관계에 상존·교차하는 경제적 행위의 배경에는 사랑과 우정이 탄탄하게 깔려 있다. 사랑과 우정을 벗겨낸 상태에서 함부로 ‘친밀한 관계’를 논할 수는 없다. 젤라이저 교수는 친밀(Intimacy)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그 단어에 내재된 따뜻함(사랑)에 더 많은 시선을 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