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인사만 드리고….” 바빴다. 오전 기자회견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경향신문사 인근에서 보기로 약속했다. 기자를 만난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양해를 구한 뒤 길을 건너갔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뒤풀이 장소로 향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문 옆에 담뱃갑을 세워놓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저건 무슨 인증샷일까.
“이따 저녁에 다시 이곳에서 뒤풀이하기로 했거든요. 거기에 휠체어 타신 분이 참석하게 되어 있어요. 문턱이 있는데, 혼자 들어가시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기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이다.
인터뷰를 섭외한 것은 시민사회단체 행사 ‘사회자’ 김덕진이라는 주제였다. 지난호에서 다룬 12월 1일 인권콘서트 때도, 그 주 주말인 12월 5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 행사 때도 그가 사회자로 나섰다. 하지만 그의 본업은 인권활동가다. “…말하자면 기능인이죠. 사회자가 직업이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돈을 받지 않으니 직업은 아니고, 제 직업은 인권활동가입니다.”
과거 이런 행사가 열릴 때 단골 사회자로 초청되는 사람은 ‘민주대머리’ 박철민씨였다. 말하자면 바통을 이어받은 셈인데, ‘전임’의 근황은 어떨까. “박철민씨 몰라요? 요즘 완전히 떴는데. SBS에서 방영하는 ‘주먹 쥐고 소림사’라고, 실제 중국에 가서 무술도 배우고….”
김덕진 사무국장이 본격적으로 사회자 일을 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중반 평택 대추리 집회 때부터다. 그 후 2009년 용산, 쌍용차, 제주 강정, 밀양 등지에서 열린 집회나 문화제 행사 사회를 도맡아 진행했다. 하나같이 오랫동안 ‘싸움’이 벌어진 곳들이다. “과거엔 skym이라고 했어요. 첫 글자만 따서. 쌍용, 강정, 용산, 밀양. 요즘에는 경북 청도의 345kV 송전탑하고 세월호까지 포함해서 ‘mcsky-세월’이라고 엮어서 부릅니다. 거기서 진행되는 행사 사회를 맡아 진행했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행사의 사회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12월 5일 민주총궐기 행사 때 그는 사회를 보면서 “평화집회를 보장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설명을 부탁했다. “경찰뿐만 아니라 종교인이나 정치인이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하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취지는 알겠고 고맙지만, 그것 때문에 평화적 집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집회 나와서 재미로 경찰차 부수고 몸싸움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당하게 통제하니 충돌하는 것인데, 저는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을 말하고 싶습니다. 농민이나 노동자, 세월호, 성소수자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이 아닙니까. 그 이슈가 해결되는 것이 ‘적극적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행사가 끝나고 사회자만 기억돼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사실 유명한 사람이 사회를 본다고 안 올 사람이 온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참여한 사람들의 발언이나 영상, 그 집회의 메시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부담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집회보다는 참여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작은 자리들, 토크 콘서트 같은 행사의 사회를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50분이든 100분이든. 참여한 사람들 모두에게 마이크가 돌아갈 수 있는….” ‘사회자의 역할’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