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변호사 조들호>-‘을의 횡포’ 비난하는 헬조선의 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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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동네 변호사 조들호> 덕분에 나는 헛된 대상을 향한 냉소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부제로 내건 에피소드가 환기한 것은 끔찍한 풍경을 가능하게 한 ‘법’이라는 이름의 체제였다.

추석 후로 떠들썩했던 한 풍경이 있다. “싸이, 왜 추석 때 집 나갔나 ‘다 던지고파’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촉발한 풍경이었다. 기사는 가수 싸이가 소유한 건물에 입점해 있는 테이크아웃 드로잉이라는 카페 세입자들이 추석 ‘연휴에마저’ 벌인 시위 ‘소동’을 비난하고 있었다. 싸이는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을 뿐인데 ‘을의 횡포’가 지나치다는 논조였다. 댓글은 그 시위를 비난하는 말들로 채워졌다. 나와 SNS로 연결되어 있는 이들 중 몇몇도 ‘을의 횡포’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곤 했다.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상당히 복잡한 문제를 전적으로 싸이의 입장에서 단순화해버린 기사를 곧이 믿어버리는 이들이 안타까웠다. 그런 어긋난 사회적 시선을 보며, 나는 ‘이런 게 헬조선이구나’ 하며 혀를 찼다. 그 시선에, 그 풍경에 나는 냉소를 보냈다.

가수 싸이 소유 건물 세입자 ‘추석 시위’
하지만 만화 한 편을 보며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헬조선의 풍경을 만든 것은 그 사회적 시선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배후에 도사린 더 큰 것이 헬조선을 만든 근본적 원인이라는 걸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네이버 웹툰 <동네 변호사 조들호> 덕분에 나는 헛된 대상을 향한 냉소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부제로 내건 에피소드가 환기한 것은 끔찍한 풍경을 가능하게 한 ‘법’이라는 이름의 체제였다.

고동범씨는 어머니의 삼계탕집을 이어서 경영하고 있다. 조들호가 “먹어본 삼계탕집 중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던 가게건만, 큰 위기에 봉착했다. 큰 권리금을 걸고 들어와 인테리어를 새로 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건물주가 나갈 것을 종용한다. 그전에 이미 한 차례 권리금 한푼 못 받고 쫓겨난 경험을 한 터라 동범씨는 싸워볼 작정이다. 지난번 가만히 물러나며 화병으로 앓아누운 어머니 때문에라도 동범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조들호 변호사는 회의적이다. “골때리는” 부동산 “법이 어떻게 세입자를 합법적으로 쫓아내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들호는 이 싸움에 뛰어든다. 만화 주인공답게.

만화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제공

만화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제공

주인공의 반대편에는 당연하게도 악당이 있다. 큰산 로펌에서 승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법 변호사 피터 최는 ‘부동산 서비스’를 기획한다. 그의 표현 그대로라면, “임차인을 쉽게 내쫓을 수 있는 서비스”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기존 상권이 과밀해지면서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상인들은 변두리로 밀려난다. 그 변두리는 다시 영세상인들로 인해 주요 상권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마치 서울 홍대 인근의 변두리였던 상수동이나 연남동이 근 몇 년 사이에 바뀌었듯이. 그렇게 주요 상권이 되면 유동인구를 노리고 거대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려고 한다. 건물주로서는 처음 영세상인이 들어올 때보다 훨씬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겠다는 프랜차이즈 점포에 하루라도 빨리 공간을 내주고 싶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기존 영세상인들의 임대기간이 남아 있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법에는 빈틈이 적지 않다. 피터 최는 그 빈틈을 공략하는 법률서비스를 건물주에게 제공할 작정이다.

고동범씨와 같은 세입자 입장에서 보면 분명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자신들이 힘과 돈을 들여 맛집과 멋집을 운영하며 동네 땅값, 집값을 올려놨더니 되레 자신들의 노력의 결실이 자신들을 내쫓는 격이니 말이다. 법으로 보장된 5년을 채우고 나면 왕창 올라가버린 임대료 때문에 쫓겨나가야 하는 것도 불안한 판국인데, 피터 최의 ‘부동산 서비스’는 그 5년마저 못 채우고 쫓겨나게 만든다. 갖은 꼼수가 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건축을 빙자한 계약 종료다. 건물의 안전이 우려되어 재건축을 한다면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는 건물을 비워야 한다. 멀쩡한 건물이라도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어 보이게끔 훼손하기만 하면 건물주는 재건축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다.

약자보다는 강자를 보호해주는 ‘법’
지금 만화 속의 고동범씨는 이런 상황 속에 있다. 만화가 너무 극단적인 사례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고약한 상황인데, 실은 테이크아웃 드로잉의 경우가 이와 유사하다. 싸이 직전 건물주가 테이크아웃 드로잉 측과 맺은 퇴거 합의의 근거가 재건축이었다. 하지만 싸이는 재건축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테이크아웃 드로잉 측으로서는 이전의 퇴거 합의를 그대로 따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만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만화에선 선과 악도 꽤나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 보니 오해로 가득 찬 시선들이 생겨난다.

때로 문제는 ‘법’과 ‘제도’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사람의 행위를 조망하는 사회적 시선인 것만 같다. ‘순순히’ 나가지 않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세입자를 두고 돈 더 받으려고 떼쓰는 몰지각한 사람 취급하는 것과 같은 시선이다. 그런 시선을 가진 이들은 말한다. ‘법’은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법대로’ 해야 한다고.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그런 시선에 경종을 울린다. “우리나라에선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 같은 건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맞아”라는 변호사 조들호의 일갈이 유효하다면, ‘법’을 근거로 한 시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보다 이 만화가 더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법’ 그 자체와 ‘법 집행’의 문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에피소드 이전에도 헌법을 비롯해 초·중등교육법과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의 다양한 하위법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해 왔다. 그렇게 전체적인 틀에서 보자면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법’과 ‘법 집행’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만화다. “인간의 평등이 상호간의 신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보장받”지 못한 현실을 조장한 것은 빈틈 많은 ‘법’이고, 그 ‘법 집행’이다. ‘법’과 ‘법 집행’이 약자보다는 강자를 더 잘 보호해주고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풍경 배후의 이런 체제를 나는 조들호 덕에 겨우 깨달았다.

그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법’으로 대표되는 여러 ‘정당화’의 기제다. 그 기제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법’이므로 ‘정당’한 것처럼, ‘국민이 뽑은 대통령, 국회’라는 권위이므로 ‘정당’한 것처럼 여러 사안을 흐려놓는다. ‘정당’한 것인 양 ‘올바른 교과서’라는 이름을 내세우고는 이상한 찬반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국민을 통합하겠다던 정부가 시민사회를 가짜 문제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누어 놓는다. 서로를 물어뜯고 비난하게 만든다. 그 풍경을 ‘헬조선’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잘못된 ‘권위’의 문제를 물어뜯는 서로의 문제로 바꾸어버린다.(금·은수저 vs 동·흙수저 구도도 그 중 하나다. 진짜 문제는 수저의 상속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다.)

그 문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작은 이야기’로서의 한계를 지닌 ‘소설(小說)’에 가까운 ‘이야기 만화’로나마 그려내려 애쓰고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간파하고 뚜벅뚜벅 걷는 이 만화의 행보가 나는 무척 반갑다. ‘우리’가 생산해내는 많은 이야기들이 헬조선의 풍경을 넘어 배후에 숨은 그릇된 권위를 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이 지키지 못하는 약자의 곁에 서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도, 진정으로 약자와 함께하는 길은 진짜 문제를 향한 비판이라는 것 또한 잊지 않기를. 내가 조들호와 함께 정말로 궁리하고 싶은 문제는 이것이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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