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불평등한 한국의 쓸쓸한 애환](https://img.khan.co.kr/newsmaker/1149/20151103_84.jpg)
도끼발
김시언 지음·문학세계사·8000원
신자유주의 세례를 받은 이후, 한국 사회는 점점 더 지독해져 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돈이 파고들었다. 돈을 매개할 능력이 없는 개인은 관계를 맺을 능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고립돼 간다. 그나마 돈을 매개할 능력이 있는 개인은 점점 수직화되는 구조 속에서 초조하게 자신의 노동을 판다. 이 시집은 불평등이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쓸쓸한 애환들을 담고 있다. 수록된 시들은 르포기사처럼 한국 사회의 헐벗은 삶들을 보여준다. 시들은 노인, 인턴사원, 식당 알바생, 영세 출판사 사원 등의 표정을 그려낸다.
“노인이 끌고 온 수레가 빼뚜름히 서 있다/ 어디서부터 빼뚤어졌을까/ 주정뱅이 남편이 떠나고/ 손자랑 사는 노인/ 서랍장 문은 삐뚤게 닫히고/ 하루에도 수십 번 기우는 마음을 다잡느라/ 허리띠를 풀었다 묶는다”(<계근대> 中) 이 시는 어느 고물상 계근대 앞에서 하루 종일 모았을 폐지를 올려놓고 눈금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폐지 줍는 노인’은 이제는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이지만, 시인의 말로 통각은 다시 자극된다. 수치로만 기록되는 독거노인의 고립된 생활의 한 단면도 그려져 있다. “밥이 다 됐습니다, 저어 주세요, 쿠쿠/ 쿠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장단을 친다/ 알았다, 쿠쿠! 잘 먹겠다, 쿠쿠!/ 밥주걱을 수돗물에 적셔 밥을 푸고는/ 시어빠진 김치 국물로 밥상을 차린 노인/ 볼륨이 잔뜩 키워진 텔레비전 앞에 다가앉는다” 바빠서 이번 주말에도 못 간다는 며느리 전화를 받고 노인은 늘 그렇듯 혼자 식사를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단절과 고립은 당연한 비용이 됐다.
“나이 어린 선배가 허구한 날 명령을 내릴 때도 스물아홉 살 나이 따윈 잊어요. 메뚜기처럼 빈자리를 찾는 일이 힘들다고 내색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등록된 인간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인턴> 中) 지문 인식으로 출입을 허용하는 회사에서 ‘등록된 인간’과 ‘등록되지 않은 인간’은 구분된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등록된 인간’과 ‘등록되지 않은 인간’을 나누는 사회가 아닐까. 시집에는 모두가 모두에게 차별당하는 신자유주의의 단면들이 담겨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