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이라는 탈을 쓴 문화재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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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보존이라는 탈을 쓴 문화재 약탈

파르테논 마블스, 조각난 문화유산
크리스토퍼 히친스 외 지음·김영배 안희정 옮김·시대의창·1만6800원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기둥머리가 받치고 있는 세 부분 중 가운데) 대리석 장식물이 어떻게 쪼개져 그리스와 영국 두 나라에서 보관하게 됐는지, 그리스가 요청하는데도 왜 오랫동안 반환되지 않는지의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파르테논은 2500년 전 페리클레스와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의해 건설된 문화유산이다. 3세기께 대화재로 내부가 일부 손실됐고, 그 뒤 기독교 교회, 아테네 그리스정교회의 대성당, 가톨릭 교회, 이슬람 모스크로 쓰이며 건축 요소가 일부 추가되거나 뜯겨져 나갔다. 그러나 신전에 가장 심각한 훼손을 가한 이는 투르크 주재 영국 대사 엘긴이었다. 그는 대리석 조각 일부를 톱으로 잘라 영국으로 가져가 빚을 갚기 위해 정부를 팔았고, 그 조각들은 현재 ‘엘긴 마블스’라는 이름으로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이는 파르테논 프리즈의 절반에 해당한다.

보존과 반환을 둘러싸고 영국 의회에서는 날선 공방을 벌여 왔다. 보존을 주장하는 입장은 현대의 그리스인은 진짜 그리스인이 아니며 그리스보다 영국이 더 안전하고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파르테논 신전 유물을 반환하면 제국주의 시절 강제로 가져온 다른 문화재도 반환해야 하기에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반면 반환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파르테논은 곧 그리스의 것이며 그리스의 것이므로 파르테논은 그리스에 보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지은이는 영국의 바이런, 토마스 하디, 존 키츠,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인용해 파르테논 신전이 반환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지은이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으니 우리 것”이라는 고집은 법령만 만들면 간단하게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존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약탈과 훼손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훑으면서 문화유산을 환수하고 복원하는 일은 유형의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보유한 인류의 에토스와 역사, 종교, 신화, 도덕성, 국민성을 복원하는 일이라는 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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