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단상-Cl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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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세(Cliche). 상투적인 문구라는 뜻이다. 원래는 인쇄용어였지만 19세기 말부터 관습적으로 쓰이는 문구나 기법, 전형 등을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다. 영화에서는 뻔한 장면, 판에 박힌 대화, 식상한 줄거리, 전형적인 기법 등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한마디로 진부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은 늘 이 클리세를 넘어서는 것이 숙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신문(新聞)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기사에는 새로운 것이 담겨야 한다. “그거 구문(舊聞)이잖아” “이미 다 나온 얘기들이야”라는 말은 언론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그래서 언론은 조금이라도 새로운 사실들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클리세’에서 벗어나기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명절 때마다 쏟아지는 명절용 기사들은 ‘클리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번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노량진과 고시원에 남아 공부를 하는 공시족들을 다룬 기사, 취업이나 결혼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게 예의라는 명절수칙을 담은 기사들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전 국민이 어느 정도는 학습이 돼 있어 한 정당이 내건 현수막에는 추석에는 취업이나 결혼에 대해 묻기보다는 ‘힘내라’고 말해달라는 당부가 붙을 정도다. ‘이미 다 아는 얘기’ 명백한 ‘구문(舊聞)’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에도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주간여적]추석 단상-Cliche

그러나 이런 기사들을 ‘클리세’라고 흘려버리기에는 씁쓸하다. 취업이 안 돼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에도 가족을 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불안한 미래로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 이제는 한국 사회의 상수가 돼버렸다. 한국 사회가 야기하는 사회·경제적인 고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것이 됐고, 특수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 됐다. 그러므로 고통 그 자체가 이제 한국 사회의 클리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참담한 고통도 예외는 아니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은 지난 추석까지 세 번의 명절을 보냈다. 몇 년째 반복되는 ‘이미 다 아는 얘기’인 명절용 기사들이야말로 고통을 심화하고 만성화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인 셈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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