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고공농성 309일 만에 조선소 크레인에서 내려와 땅을 밟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땅멀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는 강한 바람에 흔들리며 ‘고공멀미’를 느끼더니 어느새 그 흔들림에 익숙해진 뒤에는 단단한 땅바닥을 디디자 오히려 적응이 어려웠다는 고백이었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두 번째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강병재씨도 첫 번째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 땅이 낯설게 느껴지는 땅멀미를 겪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선상생활에 익숙해진 선원들이 상륙하면 겪기도 한다는 이 멀미는 간단하게는 트램펄린을 타다 내려왔을 때 땅바닥을 걸으며 느끼는 이질감과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한 바닥에 오히려 멀미를 느끼는 현상은 그만큼 인간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응이 불안과 두려움을 완벽히 없애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기아차 사내하청 고공농성장의 최정명씨가 “시간이 지나며 높이에 적응은 했지만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느끼는 불안은 매순간 반복된다”고 증언한 데서도 확인된다. 요동치는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고용안정은 꿈도 꾸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이 현재의 직장과 월급에 적응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생활을 안정시킬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노동단체와 경영계, 그리고 정부가 한마음으로 더욱 극심한 ‘노동의 유연화’를 진행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들에게 아찔한 높이의 고공농성장을 방문하라는 요구조차도 사치스러운 바람일 것이다. 대신 저 유연한 트램펄린 바닥 위에서 단 하루라도 버텨내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지난 12일 희망버스 동행취재 중 봤던, 옥포조선소의 3만5000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토요일 오후 6시에 맞춰 일제히 퇴근하던 광경이 생생하다. 정책 책임자들은 이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생생한 땀냄새를 한 번이라도 맡아보고, ‘유연화’를 내세웠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들이 불안정에 적응한 결과가 미래세대를 만들어내기를 포기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작 유연함이란 민생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정책을 끌고가 온통 멀미에 고생하게 만드는 사회시스템을 민생에 가깝도록 바꾸는 데에 필요한 게 아닐는지. 더는 멀미약을 사 먹을 돈조차 없는 서민들의 한가위 바람이다.
<김태훈 기자 anar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