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네 잘못 아니야, 할 만큼 했어”](https://img.khan.co.kr/newsmaker/1143/20150915_80.jpg)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김종수 외 지음·RHK·1만4000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들이 <주간경향>에 연재한 글과 새로 쓴 글을 묶은 책이다. 2014년 7월, 페이스북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모두가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은 단박에 화제가 됐다. 회원 수는 어느새 6000명이 넘었다. ‘페이스북에 모여 일터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각종 실수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일못임을 인증했다. ‘반전 평화’여야 하는데 ‘반 평화’라고 인쇄된 책을 끌어안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 물건을 자꾸 두고 나와 출근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 지각을 밥먹듯이 했던 기억 등.
그러나 ‘일 못하는 사람’은 그저 개인의 실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일 못하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부분이 윗사람이다. 김종수씨가 인터뷰한 전도사 노승훈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일을 잘한다. 그런데 어딜 가나 한 명쯤은 나와 호흡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겠나. 그 사람이 내 상관이고 직장의 파트너라면 나도 일못이 될 뿐이다. 그래서 나도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누구나 일못일 수 있다.” ‘일 못한다’와 ‘일 잘한다’의 거리는 사실 그렇게 멀지 않을 수 있다. 눈치 안 보고 직언을 했다가 조직생활을 잘 못하는 ‘일못’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여직원이 ‘센스 있게’ 커피 한 잔 타 주지 못한다고 ‘눈치 없는 직원’이 되기도 한다.
‘일못’과 ‘일잘’을 구분하는 것은 성별, 학벌, 나이라는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소외시키는 우리 사회의 편견에 근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못 유니온’의 운영자 여정훈씨는 애초에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의 구분이 모호하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은 일 잘하는 사람을 잘 가려내는 세상이 아니라 일 못하는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리고,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세상 아닐까”라고 묻는다. 나아가 그저 일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을 분하게 여기고 좌절감에 빠지거나 인정투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시점을 전환해보자고 말한다.
“네 잘못 아니야. 넌 보잘것없지 않아. 할 만큼 했어”라고 말하며, 세상이 강요하는 ‘일잘’ ‘성공’의 시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