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을 ‘질주’하는 욕망의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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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는 페달을 굴리지 않고서는 쓰러지는 자본의 자전거는 고비의 유목민들에게도 욕망을 부추기고, 양을 팔아 오토바이와 텔레비전을 사들이게 한다.

‘고비’에 다녀왔다.

해마다 여름이면 짐을 꾸려 찾아가는 몽골의 고비 여행이 벌써 열 번째를 넘어서고 있다. 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펼쳐진 황야를 무얼 보겠다고 해마다 찾아가느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같은 곳을 순례처럼 찾아가는 걸음에도 이유가 없지 않다.

아무것도 볼 게 없는 게 첫 번째 까닭이고, 오래전에 잃어버린 ‘심심해서 죽겠다’란 말을 다시 만나보는 게 두 번째 이유이고, 그악스러운 돈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곳이라는 게 세 번째 연유이다.

고비도 세월의 변화를 어쩌지 못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남고비의 종착지 달란가드자드까지 포장도로가 깔리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정없이 흔들리는 차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폭염의 불모지를 달리던 괴로움은 사라졌지만, 대평원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 도로가 가슴팍을 저미는 상처처럼 섬뜩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머지않아 남북 종단의 아스팔트 도로가 완공되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관광버스가 꼬리를 물고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들을 실어 나를 것이다. 그들을 맞이하게 될 고비의 변화도 눈에 선하다.

바끄가즐링 촐로의 게르 지붕 위에 앉아 있는 몽골 소녀. / 이시백

바끄가즐링 촐로의 게르 지붕 위에 앉아 있는 몽골 소녀. / 이시백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탄 목부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며 사회주의 국가였던 몽골도 1990년대에 헌법을 개정해 자본주의를 받아들인다. 가슴팍에 매달았던 사회주의 시절의 훈장들이 좌판에 널려진 채 ‘원 달러!’에 팔려나가고, 거리에는 노래방과 가라오케 간판이 앞다투어 내걸리기 시작했다. 자본은 황량한 고비의 유목민 가정에도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으레 말을 타고 양을 몰던 목부들은 이즈음에 이르러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바람을 일으키며 초원을 달리던 ‘말치기’들의 휘파람 소리도 전설처럼 아련해지고, 초원에는 온갖 수입차들이 남겨 놓은 바퀴자국이 생채기처럼 어지럽게 가로지른다.

몽골의 이러한 변화에는 급속 성장을 자랑하는 솔롱거스(한국)의 영향도 적지 않다. 울란바토르 시내의 음식점이나 유흥업소들을 선도하며, 조상의 빛난 얼을 몽골에 되살리고 있다. 몽골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키며 인기를 모으던 TV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될 시간에는 날이 저물어도 고비의 유목민들이 양을 데리러 나가지를 않았다는 소리가 있었다.

광활한 초원에 듬성듬성 쉼표처럼 찍혀 있던 유목민의 게르에도 위성접시가 얹혀지고, 태양열 전지판에 연결한 텔레비전이 좁은 게르 안마다 놓여 있다. 자본은 염소보다 힘이 세다. 전통적으로 유목민들은 양과 염소를 8대 2의 비율로 길렀다. 그런데 염소 털이 캐시미어 옷감으로 돈이 되면서 지금은 그 비율이 전도될 지경에 이르렀다. 뿌리까지 뽑아먹는 염소들 때문에 고비의 사막화가 가속되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항가이 산에서 만났던 소녀 을찌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꾸 소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 이시백

항가이 산에서 만났던 소녀 을찌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꾸 소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 이시백

유목민 게르의 위성접시와 TV
소비라는 페달을 굴리지 않고서는 쓰러지는 자본의 자전거는 고비의 유목민들에게도 욕망을 부추기고, 양을 팔아 오토바이와 텔레비전을 사들이게 한다. 초원의 풀을 뜯고 새끼를 낳아 지속가능하던 말에 비해 오토바이는 주기적으로 기름을 채우기 위해 손을 벌린다. 게르 안에 들여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새로운 상품이 소비의 욕망을 부풀리고, 고비는 유목민들이 소비한 물건들의 쓰레기로 덮여간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주변의 내다버린 술병과 세제와 플라스틱 그릇들이 축구장만큼 널려져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자본은 반생태적이며, 반환경적이다. 지속불가능하며, 밑바닥에 구멍이 나서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욕망의 항아리이다.

고비를 찾을 때마다 유목민 가정의 아이들에게 전할 학용품이나 헌옷들을 여행자들과 챙겨간다. 몇 해 전에 밤늦게 항가이 산을 넘다가 길을 잃어 유목민 게르에서 하룻밤을 얻어 잔 적이 있다. 이튿날 아침에 낯선 손님들을 보러 어린 남매가 놀러왔다. 사탕을 건네주자 ‘을찌마’라는 소녀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든다. 하나를 더 건네자 철이 없는 남동생은 대뜸 손을 내밀어 받으려 한다. 그러자 누나 을찌마가 조용히 남동생의 손을 가로막는다. 학교도 다니기 어려운 외진 산중에서 자란 열 살도 안 돼 뵈는 소녀이지만 참으로 기품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도 볼강의 어느 유목민 게르에 들렀다. 게르에 들어서기 무섭게 조금 전까지도 뵈지 않던 아이들이 어디선가 한꺼번에 모여든다. 여행자들이 준비해 온 학용품과 옷들을 나눠줄 때, 이웃의 게르에서 뒤늦게 어린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는 낯이 선지 문 앞에서 쭈뼛거리며 선뜻 들어서질 못한다. 그때 아이의 뒤에서 큼지막한 손이 넌지시 등을 떠미는 걸 보았다. 아이의 엄마로 뵈는 여자가 멈칫거리는 아이들에게 인상을 쓰며 자꾸 게르 안의 손님들 앞으로 아이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꾸 두 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사탕을 더 집으려는 동생의 손을 조용히 쥐던 을찌마와, 어른에게 등을 떠밀려 손님들 앞으로 다가서던 볼강 마을의 어린아이.

몽골이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멀쩡한 강을 파헤쳐 보를 막고 ‘녹색성장’이라고 둘러대던 나라, 늙은 노동자의 목을 잘라 늙어갈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자며 ‘창조경제’라는 야릇한 말을 태연히 주절거리는 나라.

초원의 풀을 아끼기 위해 한 해에도 너덧 번씩 옮겨 다니며, 게르의 기둥을 세웠던 자리마저 말끔히 메우고 떠나던 고비의 유목민들에게 ‘고비 일번도로’가 앞으로 어떤 ‘녹색’과 ‘창조’를 불러들일지 심히 걱정부터 앞선다.

<이시백(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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