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치권력 대신 자본권력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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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져가는 ‘돈의 힘’에 의해 언론자유 위축, 민주적 가치 훼손

5공 시절, 정권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자주 다루던 4컷 만화 ‘두꺼비’에는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느긋한 풍경이 그려지는데, 이 만화 때문에 담당 만화가가 연행되고 연재가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의 특정 신체 부위가 연상되는 둥그런 해가 저물어가는 표현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혹독한 시대를 벗어나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신문만화에 대통령의 얼굴이 자유롭게 등장하는 등 점차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성역들이 허물어지게 됐다.

장도리가 연재되던 초창기만 해도 ‘재벌’이란 단어 대신 ‘대기업’을 적어넣어야 했고, ‘좌파’라는 단어는 지금의 ‘종북’과 같은 마타도어로 인식돼 쉽게 사용할 수 없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봄기운에 눈 녹듯 여러 표현의 제약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장도리 20년 회고](3) 정치권력 대신 자본권력 시대로

그러나 확장돼 가는 언론의 자유 이면에는 또 다른 예속과 제약이 자라나고 있었다. 한국의 언론들은 정치권력의 속박을 벗어나는 대신 자본권력의 영향 하에 들어가게 됐으며, 독재 권력에 대한 민주화 투쟁의 과정을 지나고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진영의 대립구도가 구축돼 사실 보도와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보다 진영논리가 우선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처럼 사회전반을 통해 커져가는 자본권력은 진정한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고 그로 인해 어렵게 쌓아올린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가치들이 훼손될 위기로 향하고 있었다.

<박순찬 경향신문 화백>

장도리 20년 회고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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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