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컷만화의 주인공은 ‘우리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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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무대 위에서 제 역할 하려면 ‘모순과 부패’ 사라져야

경향신문에 4컷 만화 장도리를 연재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됐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만화로 표현하고 기록하며 독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한다는 기쁨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접하면서도 부족한 실력과 내공 탓에 컷 안에 깊이 있게 담아내지 못함을 한탄하기도 했다.

[장도리 20년 회고](1) 4컷만화의 주인공은 ‘우리 이웃’

대한민국의 20년 세월이 강물처럼 굽이쳐 흐르는 동안 5명의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의 수많은 인물들이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장도리 연재가 시작된 해인 1995년엔 5·18특별법이 제정돼 전직 대통령이 반란수괴죄로 구속됐던 바와 같이 군사독재정권 시대 인물들의 몰락과 함께 민주화 세대 정치인들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었다. 또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승승장구하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추락이 있었던 시기엔 안철수씨와 같은 벤처기업인이 조명을 받으며 등장하고 있었다.

매일 연재되는 신문만화 속에는 이와 같이 많은 인간 군상들의 등장과 퇴장이 그려진다. 화려하게 등장하는 인물이든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든,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시대적 역할이 끝나면 쓸쓸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그들은 재벌의 횡포 속에 신음하는 골목길 상점의 주인으로, 심화되는 빈익빈부익부 경제구조 속에서 소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는 샐러리맨으로, 대통령의 공약에 기대를 걸다 뒤통수를 맞은 유권자로 4컷만화 속에서도 언제나 숨 쉬고 있었다. 결국 우리의 역사는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는 몇몇 사람들이 아니라 공장에서, 골목 상점에서, 사무실에서, 농어촌에서 묵묵히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악당을 소탕하고 해피엔딩을 만들어내는 주인공과는 달리 현실 속 주인공들은 수많은 재앙과 모순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주인공들이 진정한 주인공의 역할을 무대 위에서 펼치기 위해 이 땅의 수많은 구조적 모순과 부패를 걷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순찬 경향신문 화백>

장도리 20년 회고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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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